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민주주의와 민족화해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대의 거목이었다. 그는 죽음의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며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졌고, 마침내 우리 정치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또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남북화해시대를 주도하였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였다. 그의 재임 중 업적에 대한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야 이제 역사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김 전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온 큰 별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겪게 됨에 따라, 우리 정치사회가 받는 정신적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민주당의 충격이 큰 모습이다. 민주당이 배출했던 두 전직 대통령을 모두 잃은 당에서는 "이제 고아가 되었다"며 비통함을 표하고 있다. 이런 말이 지나치지 않은 것이,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정신적 뿌리이자 지주였다. 민주당은 어려운 고비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그는 야당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곤 했다. 이런 그가 민주당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때에 서거하였으니, 민주당이 받고 있을 충격을 짐작할 만하다.
이제 민주당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개척해가야 할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기 열성적 지지층을 가져왔고, 그 존재는 민주당에게도 큰 원군으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두 전직 대통령의 후광 없이 제1야당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새로운 다짐이 필요해 보인다. 두 전직 대통령의 기반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가겠다는 정신, 그동안의 크고 작은 분열을 딛고 야권의 단합을 이루어내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민주주의와 민족화해를 향한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되, 두 사람의 시대가 남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앞으로 탈노무현, 탈김대중 시대를 맞아야 하는 민주당에게는 새 출발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성찰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서거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재발견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차원일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대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 이면에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진전시켜 놓았던 민주주의와 민족화해가 현정부 집권 이후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비판적 정서가 결국 고인들의 업적을 더욱 기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생의 마지막까지 이명박 정부에서의 민주주의 후퇴,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하고 비판하다가 서거했음을 이 대통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층이 드러내고 있는 안타까움의 목소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안타까워 하고 슬퍼했던 것은 단지 생물학적 죽음 자체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성과가 오늘 들어 좌절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의 표현이었다. 그들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역할이 더 필요했다고 생각할 만큼 작금의 현실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다. 결국 현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간절한 추모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드러낸 안타까움과 슬픔의 정서를 대승적으로 껴안지 못한다면 국민통합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것임을 이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지지층이 맞서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의 화합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제는 통합의 리더십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