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이 부쩍 상승한 듯 싶다. 프랑스 등 전통적인 원전 강국들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한 일과 핵안보 분야 최상위 회의체로 꼽힌다는 '핵 안보 정상회의'의 2012년 개최국으로 선정된 일을 두고 떠들썩한 환호와 찬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세계적인 원전 강국이 새삼스럽게 '핵주권'을 요구하다니 어찌 된 일인가.
언론에 따르면 1974년 체결해 오는 2014년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력협정'과 1991년의 '남북비핵화공동선언'으로 인해 핵연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핵연료의 가공·재활용·재처리 권한이 없어 향후 몇 년이면 임시저장된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 한다. 사실 핵주권 논의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지난해 5월 북한 2차 핵실험의 충격으로 촉진되었고 올해 들어 원전 수출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한층 고조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만큼은 늘 고분고분한 한나라당에서도 문제투성이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자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는 바 여기에는 시급한 현안인 핵연료 재처리와 원전 수출 등을 위해 '평화적 핵주권'을 찾자는 의견에서부터 핵억지를 위한 핵무장에 착수하자는 의견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핵주권에 대해서는 정당들 간에도, 정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안의 한쪽 끝에는 '핵확산'을 의심하는 미국이 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철부지처럼 막무가내인 북한이 있다. 사안의 정중앙에는 주권적인 핵의 사용이라는 대의가 있다. 사안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큰 마찰 없이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대안으로 근래에 등장한 것이 바로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다.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남은 핵연료를 다시 원자력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 기술은 플루토늄 등 무기화 가능한 핵물질의 분리, 회수와는 무관하기에 바로 이 기술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원자력 협정을 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기술적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과연 정치적 사안이 그처럼 기술적 사안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작금의 우리 사회의 핵주권 논의를 지켜보면 무언가 핵심이 빠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의견들, 예컨대 핵무장을 위한 핵주권이 아니라 경제적 실익에 따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리'를 획득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핵의 문제가 경제적 실익이나, 좀 더 나아가 국익과 안보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핵의 고통으로 세대를 이어 시달리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존재를 잊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8·15 해방의 전주곡으로만 알고 있는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모두 7만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희생되었으며 생존자들도 심지어 2세, 3세의 일부까지 유전에 의한 각종 원폭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이들은 원폭 투하 당사자인 미국, 식민지 조선인들을 착취와 징용으로 원폭 현장에 있게 만든 일본, 그리고 조국 대한민국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적절한 의료혜택과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다.
순전한 정치논리만으로 보자면 효과적인 기술을 내세워 큰 외교적 마찰 없이 실속을 챙기는 일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의 문제는 인간 삶의 문제요, 정치와 역사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체 핵으로부터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 핵주권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대한민국이 자신의 핵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따로 있다. 원폭피해자와 그들의 자녀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특별법의 전문에는 모든 핵무기의 영구적 철폐를 명문화해야 한다. 이처럼 원폭피해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며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로 올라설 때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 떳떳이 자신의 핵주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며 원폭의 직간접 가해국에 사죄와 배상도 요구할 수 있다.
올해는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이다. 그리고 오는 29일은 한국원폭2세 환우회 김형률 회장 작고 5주년이다. 그는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어머니를 둔 '원폭2세 환우'로 원폭 피해자들의 인권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고인의 5주기 추모식이 29일 오전 부산민주공원에서 거행된다.
부산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