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중 수교 18주년이다. 한중 수교는 중국동포들의 한국으로의 노동 이주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재 국내에 있는 중국동포는 등록외국인의 40% 이상인 36만 명에 이른다. 1990년대 한국정부는 중국동포에게 산업연수생제도 외에 친척방문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1999년 재외동포법 제정으로 재외국민 및 외국국적 동포들이 출입국과 체류에서 준국민에 해당하는 혜택을 받게 되었을 때도 이들은 배제됐다. 그 적용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정부수립 이전에 해외로 나간 중국과 옛 소련지역의 동포, 재일동포 중 북한 국적 동포 등 약 300만 명은 제외됐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중국동포들의 소송으로 재외동포법 관련 조항이 헌법불일치 판결을 받았고 이들 동포들도 '외국국적동포'에 포함되게 되었다.
이후 중국 동포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들보다는 취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서 동포우대정책으로 평가받아 온 취업관리제, 특례고용허가제, 방문취업제 등의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제도는 공히 동포들이 일정한 기간 일정한 업종의 단순노무직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소위 3D 업종에 노동인력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데 중국동포를 동원하고자 한 제도라는 점에서는 이주노동자 일반에 대한 정책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정부는 중국동포들을 최장 5년의 단기고용 외국 인력으로만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동포가 한국에 정착하는 경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중국동포의 '대규모 정주화'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올해 4월 정부도 일정한 요건이 되는 중국동포에게 영주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요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중국동포를 외국 인력으로만 생각할 뿐 함께 살아갈 이주민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동포를 외국 인력으로만 활용하려는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는 일본의 일계인(日系人)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일본은 고도성장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많은 노동력을 해외각지로 보냈었고, 일계인은 이 시기 해외로 이주했던 일본인과 그 자손을 가리키는데, 특히 브라질 출신이 많다. 일본 정부는 1990년 일계인에게 일본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주었다. 이후 일계인들은 빠르게 증가해 일본 내 이주노동자 중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혈통적 동질성에 대한 상상만으로 일계인의 사회통합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이들은 외국인으로서 사회복지에서 배제된 채 불안정한 고용으로 사회주변부 계층으로 전락했다.
일계인들은 출신국에서 경력, 학력, 직업이 어떠했든 자동차나 전기, 전자 부품 등 특정 업종에서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밖에 얻을 수 없었다. 기업들은 사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고,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용역회사나 파견회사를 통해 고용계약기간이 아예 없거나, 3개월 이하 단기계약의 간접고용 형식으로 이들을 고용했다. 어디든지 살고 싶은 곳에 살 자유가 있었지만 고용주의 도움 없이는 '외국인'은 집을 얻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공단 근처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초단기계약의 일자리를 쫓아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이들의 2세들도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었고, 세대에 걸쳐 주변부 노동계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이민자에 대한 사회통합 지원책, 다문화정책 등에서 철저히 배제해 왔다. 결혼이민자들과 달리 이들을 곧 돌아갈 사람들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미 가족단위 이주와 정주화 기미가 뚜렷한 중국동포에 대해서조차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중국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상상'하면서 별다른 사회통합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주민임을 인정하고, 이주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지양하고, 이들이 주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국은 해외동포를 값싼 외국 인력으로만 활용하려다 세대에 걸친 사회주변부계층을 양산해 낸 또 하나의 사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