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북한의 대남 유화공세가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일촉즉발로 치닫던 남북의 군사적 대결 양상도 일단 누그러지는 분위기다. 이제 남북관계는 다시 봄날을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우리 정부는 북측의 대화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역제의 등을 검토하면서 좀 더 지켜볼 태세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을까.
북한은 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남 당국 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공식 제의한다"고 밝혔다. 또한 중단된 적십자회담 등의 재개를 제의하고 판문점 적십자 통로 재가동과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동결 해제를 발표했다. 북한은 앞서 1일 신년공동사설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데 이어 5일 연합성명을 통해 조건 없는 남북회담을 잇따라 제의한 바 있다.
북한의 태도가 이렇게 돌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북한 내부의 복잡한 정치일정 및 경제사정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내년 2012년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이자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이다. 더불어 이미 드러난 3대 후계세습체제를 공식 출범시키는 해로 점쳐지기도 한다. 이를 한해 앞둔 2011년 후계자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지도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모든 측면에서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업적을 쌓아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는 등 최대한 정통성을 확보하려 안간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올 초 북한이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은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어디에 꽂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북한은 '올해에 다시 한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는 사설 제목을 붙였다. 가장 주목할 세 가지 열쇳말은 경공업, 인민생활 향상, 그리고 강성대국 건설이다. 북한은 특히 2009년 11월 화폐개혁 이후 더욱 추락한 주민생활 향상을 '경제, 정치사업 차원의 절박한 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경공업 발전이 후계자인 김정은 정권의 사활까지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은 경제건설 매진을 위해서는 대외 환경의 안정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의 악화는 북한 정권에게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후계정권은 내부적으로 강한 군사적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군사적 도발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제사회 고립을 탈피하고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외교협상 리더십도 보여줄 필요성이 강격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 시험대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놓는 일일 것이다. 특히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과 관련한 사과나 재발방지와 관련한 남한 측의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이런 요구를 선군정치를 앞세우고 있는 북한 내부 정치 메커니즘으로 볼 때 수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차선의 대안이라면 남북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논의하고 점진적으로 진전시키는 일이다. 이는 남북관계뿐 아니라 대미 관계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더불어 비핵화는 대규모 외화유치를 통해 북한 경제전반의 재건을 이끄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비핵화 결단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마지막까지 대내외적 위신과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실리도 챙기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붙잡으려는 기존 전략을 고수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북한 정권의 약점을 더 흔들어 벼랑 끝으로 밀어넣느냐. 아니면 처음에는 미흡하더라도 협상과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비핵화, 군사적 도발능력을 약화시켜 상생과 평화를 모색하느냐. 그러면서 차기 총선이나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의 유리한 발판을 만드느냐. 문제는 전자를 선택하면, 즉 강경일변도의 현 정책기조를 고수하면 최악의 경우 북한의 자포자기식 군사적 도발로 인한 전쟁발발과 우리 측의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남북한 정권 모두 올 한 해는 휴전 이후 가장 어려운 선택의 순간들을 맞닥뜨릴지 모르겠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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