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을 이제 '제국' 혹은 '초강대국'이라 부른다. 이전에는 미국 앞에만 붙을 수 있었던 수식어가 이제는 중국까지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G-2' 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중국이 엄청난 속도와 팽창력으로 경제, 군사대국으로 부상하며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자 기존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신흥강국인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경제위기·중동사태·기후변화·핵확산 등 각종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중국이라는 신흥제국을 상대하고 다루는 국가 차원의 능력, 노하우, 그리고 인맥 등이 모두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더구나 우리는 동족이면서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이라는 상대를 곁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미동맹에 기초해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도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국익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 한민족이 동북아 질서재편 과정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김정은 단독 방중' 오보 사건이다. 정부는 20일 오전 7시께 함경북도 남양에서 중국 지린성(吉林省) 투먼(圖們)으로 넘어간 '특별열차'에 탄 북측인사가 이날 오후 5시까지만 해도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아직도 김정은 부위원장의 동행 여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외신과 현지 소식통에 의존해 북측 고위 인사의 방중 소식을 접했지만 중국 정부로부터는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남북관계 아래에서도 북한과 중국은 은밀한 교감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과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외교채널을 통한 김정일 방중과 관련한 상황 파악이 거의 안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그간 한중관계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해왔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해 5월 3일부터 7일까지 베이징과 선양을 방문했고, 이어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을 둘러본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과 중국 지도부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합의 내용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나온 것 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방문 배경과 목적을 놓고도 선입견을 토대로 갖가지 억측만 내놓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와 한중관계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북중 정상 사이에 한반도의 운명과 통일 경로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의들이 이뤄져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중국방중 목적은 일정이 추가적으로 확인돼야 드러날 것이다. 다만, 최근 김 위원장이 보여주고 있는 국내외 정치 키워드가 '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방중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초점을 맞췄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2012년 순조로운 3대 권력세습의 토대로서 강성대국 건설을 통한 민심 얻기에 심혈을 쏟고 있는 그로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진전시키는 데 특별히 공을 들일 법하다. 그는 올해 1분기 총 35회의 공개활동을 했는데, 이 가운데 분야별로는 경제분야 시찰이 12회로 가장 많았다. 최근까지도 라진조선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성진제강연합기업소 등 주요 산업시찰을 이어갔다. 이번 중국 방문은 어쩌면 해외 현지지도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를 수행하고 있는 70명의 수행원 가운데 상당수도 경제관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북중간의 가시적인 경제협력 합의들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다 전향적인 경제정책 방향들이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이 1년 안에 세 차례나 중국을 연이어 방문하는 배경과 관련해 이념적 선입견으로 판단하기 보다 다른 '숨은 그림'이 없는지 냉철하게 살펴볼 일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잇단 방중으로 고착화되는 북중 동맹의 벽을 뛰어넘는 능동적인 대북 정책을 구상하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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