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으면 오래 산다고 했는데 이번 총선 공천과정으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가히 영생을 얻을 법하다. 개혁공천이 물 건너갔다는 비난이 사방에서 세차게 몰아쳤고 급기야 한 대표는 피로누적으로 병원신세까지 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개혁공천. 참으로 매력적인 단어인데 그 실질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민주통합당 공천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대략 세 가지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 현역 물갈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둘째, 386세대의 주도권 행사가 과하다. 여태 민주화 투쟁하냐는 비아냥거림이 들린다. 셋째, 친노세력이 지나치게 활개친다.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려 한다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다면 먼저 생각해 볼 일이 있다. 과연 어떤 인사를 등용시키는 것이 개혁공천이고 그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원내 다수당 확보와 집권, 이것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 탓에 대안세력으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민주통합당의 과제와 사명을 명확히 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어진 과제는 큰 틀에서 세 가지로 집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남북관계의 복원이다. 이것은 안보차원을 넘어 국가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둘째, 재벌개혁이다. 30대 대기업이 국내 총생산량의 5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독점 지배구조를 혁파하지 않으면 국가권력 자체가 무력한 것이 될 수 있다. 셋째, 복지사회 구현이다. 이를 위해서는 혁명적 수준의 조세개혁이 필요한데 아마도 신생국 하나를 건국하는 일 만큼이나 지난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들 세 가지 과제는 진보 진영과 민주개혁 진영이 합의에 도달한 지점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인물이 이 같은 과제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것인가. 편의상 용어를 하나 지어보고자 한다. '문재인 공천'과 '안철수 공천'. 전자는 현재 국면을 민주화 과정의 연장선상에 놓는 것이고 후자는 사회운동 시대 이후, 시민사회의 성숙을 전제로 한 관점이다. 민주통합당 공천이 안팎의 비난에 직면한 까닭은 '문재인 공천'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말과 다름없이 들린다. 그런데 나는, 다수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지 모르나, '문재인 공천'이 옳다고 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회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행태를 놓고 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추구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자원은 민주화 운동그룹 속에 있다고. 그들은 공적 헌신으로 젊은 날을 보냈고 10년간 집권경험을 했고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연륜에 이르렀다. 실수와 실패도 많았겠지만 그들은 다른 어떤 세대가 겪을 수 없는 경험을 치러냈다. 이 같은 자산을 배제시키고 대체 어디에서 인재를 구해 와야 개혁공천이 된다는 말인가.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각종 인터뷰에서 반복하던 말이 무척 인상 깊다. "정치,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이 말의 맥락을 보면 결코 오만한 의미가 아니다. 정치행위가 엄청나게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 십분 동의한다. 어제까지 교수, 변호사, 기자, 기업가를 하다가 불쑥 등장해 국회의원이 됐다고 정치를 잘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새로운 인물이 더 청렴하거나 참신하다는 증거도 없다. 어째서 정치 계절풍이 불 때마다 새것 선호증이 유행처럼 번지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흔히 기득권의 해악을 염려한다. 하지만 기득권 잣대를 모든 정당에 동등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민주통합당의 주축을 이루는 민주화 운동세대들이 걸어온 길을 섬세히 들여다본다면 기득권은커녕 가슴 아픈 자기 희생과 모험적 열정에 가득한 인물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을 일러 '올드보이의 귀환'식으로 모멸하는 세태 앞에 당혹을 금할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는데 그런 시대, 안철수로 상징되는 탈이념적 비투쟁적 양심세력이 전면에 등장할 시기가 대한민국에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고군분투 중인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에게 위로삼아 한마디 건넨다. 사회 일각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