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괴물, 블랙홀. 주변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진공청소기처럼 집어삼키는 공포의 화신이다. 거대한 별이 최후를 맞은 후 생겨난 블랙홀은 상상을 초월하는 밀도와 파괴력을 갖는다. 태양이 블랙홀이 된다면 작은 마을 크기, 지구라면 콩알 크기로 쪼그라드니 그럴 만도 하다. 시공간이 뒤틀리고,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 무게가 1g에 한참 못 미치는 초미니 블랙홀도 있다. 하지만 주위를 빨아들이면서 몸집을 키우는 건 시간문제.
7년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된 빅뱅 실험을 놓고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양성자 빔 충돌로 블랙홀이 생겨나 결국 지구를 멸망시킬 거라는 반론이 드셌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지구에 부닥치는 수많은 유성우가 미니 블랙홀을 만들지만 금세 사라지면서 종말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논리가 KO승을 거둔 것이다.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저주'인 블랙홀은 이름 그대로 완전한 암흑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세출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복사이론을 통해 "그리 검기만 한 건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블랙홀 표면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의 지평선'에서 입자가 방출된다는 것이다. 일부 에너지가 밖으로 튀어나오니 조금이나마 빛을 내는 어둠이 될 밖에.
호킹이 또다시 새 이론을 들고 나왔다. 블랙홀은 영원한 감옥이 아니며, 다른 우주로 가는 출구가 있다는 것이다. 설사 거기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빠져나올 방법이 있다는 확신과 함께. 그는 두 가지 경로로 출구 전략을 설명한다. 물질과 정보가 사건의 지평선에 쌓였다가 블랙홀 입구로 다시 나오거나, 이 선을 넘어간 후 정보만이 기능을 상실한 채 다른 차원의 우주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질은 블랙홀 내부의 엄청난 중력으로 갈가리 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호킹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아 "나 같으면 시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출구는 있으되, 영화 '인터스텔라'와 같이 블랙홀을 통과한 우주여행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호킹은 이에 대해 수학적으로 입증한 결과는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새 가설은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파괴 일변도로 알려진 블랙홀에 창조의 일면이 있다는 사실, 그건 곧 '창조적 파괴'를 의미한다. 비움과 채움의 심오한 철학이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인체를 소우주라 불렀다. 들숨의 통로가 날숨의 그것이듯이, 블랙홀 역시 파괴와 창조성을 지닌 우주의 숨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