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질병을 우리는 대사증후군이라 부른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문명병이라 할 만하다. 오래전 인류가 겪지 않았던 질병들이 지금 쏟아져 나오기 때문. 수만 년 전 인류와 현재 우리는 DNA 차이가 별로 없다. 그만큼 유전적 진화가 더디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의 발명 이래 문명은 신체 진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
늘씬하고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은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보면 운 좋게 생존한 거다. 초기 인류는 먹고살기에 바빴다. 사냥하지 못하면 쫄쫄 굶어 죽을 수밖에. 신체에 비상이 걸릴 건 당연지사. 그래서 가급적 영양분을 많이 축적하려 한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지방으로.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도저히 우리 몸이 감당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유전적으로 따라잡지 못할 만큼 고칼로리 음식이 넘쳐난다. 대사증후군이 폭발적으로 생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류의 진화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이 지방과 단백질로만 이뤄진 식단으로 생존한 건 지방 대사를 조절하는 유전자 변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유 속 당분 소화 능력을 간직하게 된 것이나, 열대우림의 수렵인들이 키가 작아진 것도 살기 위한 돌연변이 덕분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공상영화 속의 '고질라'나 '닌자거북이', '엑스맨' 등도 외적 요인이냐, 자연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돌연변이 결과다. 방사능이나 화학물질에 노출되더라도 DNA 손상 없이 초능력을 얻는다. 그리고 행운이 잇따르면서 단숨에 진화의 단계를 건너뛰는 기적이 연출되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기껏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 조작으로 판단력을 높이고, 비만 치료법을 찾는 연구가 진행될 정도의 초보 수준.
이번에 우리 의학자들이 돌연변이 '시스-AB형'을 찾아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혈액형이 나온 것이다. '시스'는 '한쪽에 있다'는 뜻으로 원래 A형 유전자가 B형으로 살짝 치우치면서 AB 형질을 갖추는데, 이번 경우는 역으로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사례자의 부모가 모두 B형으로 '시스-AB' 유전자가 없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 그 원인은 알 수 없으되, 엄청나게 바뀐 환경에서 생활 방식이 유전적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