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대응할 시간이 주어지면 위기는 현실화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쯤 된다. 통상적으로 심리적 공포를 제거하기 위한 말이긴 한데, 100% 들어맞지는 않는다. '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아흔아홉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 징후는 거듭해서 파탄의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그때마다 이를 무시하거나 호도해서 덮어버린다. 징후에 정면으로 직면한다면 위기는 반전될 수 있다.
말이야 그럴 듯한데 과거의 사례를 보면 그게 뜻대로 안 된다. 징후들이 나타나고 경고의 목소리가 잦아진다. 그래도 결국 위기는 오고야 만다. 그 징후라는 것도 어찌 보면 결과론일지도 모른다. 일이 벌어진 뒤 되돌아보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금세 드러난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경향성을 띤다는 점이다. 오류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병탄, 6·25전쟁…. IMF 사태가 그랬고 대통령 탄핵이 그랬다. 늘 결말은 비극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과연 대한제국 말기와 달라질 것인가.
오류의 반복은 심리학으로 보면 사냥의 심리기제다. 사냥은 숱한 실패를 반복한다. 그리고 간혹 성공한다. 실패 땐 손실을 잊고 성공만을 기억한다. 손실거부와 후회의 회피, 긍지의 축적이다. 유리한 증거만을 채택해 자기 강화를 하고 자신의 예측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이른바 확정 편향과 사후판단 편향이다. 그런 바탕 위에 다시 실패한 창 던지기를 시도한다. 과도한 확신이 오류의 반복을 가져온다. 사냥은 수십만 년인데 반해 현대적 삶은 불과 수백 년에 불과하다. 의식은 얕은 반면 잠재의식, 집단무의식은 깊고도 깊다. 그러니 오류는 앞으로도 반복된다.
그러면 오류의 반복을 피하는 방법은? 글쎄, 그게 참 쉽지 않다. 그렇긴 한데, 단 하나 집단지성이라면 오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집단지성이라…. 사실 개념 속에만 기억될 뿐 그 존재를 확인하긴 쉽지 않다. 대학, 문화계, 정치권, 법조계, 관계, 재계, 언론계…. 어디를 꼽아 봐도 답은 쉽지 않다. 어떤 분야든 이익과 생존에 급급하기는 마찬가지다. 광장은 너무 느리고 시민사회계는 파편화돼 있다.
위기는 거듭해서 반복된다. 그러니 대통령 탄핵은 위기의 끝이 아니다. 개헌, 대통령 수사, 대선만 해도 첩첩산중이다. 사드, 위안부, 북핵은 또 다른 전쟁. 뇌관은 도처에 늘려 있다. 숱한 위기의 파고를 넘으려면 튼튼한 배부터 마련해야 한다. 이념이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중심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게 가능할까 의문도 있다. 하지만 양심적인 중심세력이 뭉치지 못하면 위기의 반복은 하늘처럼, 땅처럼 명확한 것이다.
물론 최상의 답은 엘리트층의 각성이다. 그렇긴 한데, 그게 가능할까 싶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대통령 탄핵 사태는 엘리트층의 속성을 엿보게 한다. 사건의 주역이 갑남을녀이고 조역이 엘리트들이니 해괴한 경우다. 그들이 탐한 건 권력일 뿐 나라와 국민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정권이 바뀐다 한들 그 버릇이 어디 갈까. 그러니 그들을 보완하고 감시할 시민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광장은 일상적이지 못하고 지속적이지도 않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에 한 번 표출되는 분노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그 광장을 일상으로 옮겨 놓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색채는 거부해야 마땅하다. 10여 년 동안 이념 다툼, 정치 다툼만 거듭하다 지금 이 꼴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시급한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과 자립과 자족이다. 국정 농단은 단죄됐지만 나라의 자존은 확립되지 못했다.
모든 문제의 근간은 과도한 집중에 있다. 힘의 치우침은 곧 한국병이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은 충분히 목격한 바다. 통치를 협치로 바꾸려면 권력의 하방, 분산이 필요하다. 중앙집중화는 한국병의 근원이다. 인사, 재정, 조직권을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 이른바 지방 분권이다. 부의 집중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 부가 아래로 고르게 흘러가야 정상을 회복한다. 경제민주화, 세제 개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출산 고령화, 육아와 교육의 불평등은 더는 방치해선 안 될 문제다.
대외적인 문제도 집중이 문제의 핵이다. 사드 갈등은 미국에 치중된 결과다. 사드 보복 역시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과도한 데서 비롯됐다. 그들의 파워게임에 휘둘리는 건 우리 내부의 무게 중심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깨달았듯이 정권 교체와 엘리트층의 권력 이동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국민뿐이다. 민주화란 것도 따지고 보면 권력을 소수 엘리트에서 다수의 국민으로 분산시키는 과정이다.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고, 권한이 중앙에 예속되고, 부의 쏠림이 심화되는 한 반듯한 사회를 만들긴 어렵다. 다수의 국민, 그 중에서도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실패의 역사는 반복된다. 흩어진 양심 세력을 모아 굳건한 안정을 찾을 방법이 어디 없을까. 다들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