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쯤의 일이다. 8억 원이 넘는 헨리 무어의 걸작품 해시계와 청동 조각품을 훔친 청년 도둑이 고물상에 단돈 8만 원에 팔아넘겼다. 고물장수가 되돌려 주었기 망정이지 명품이 고물이 될 뻔했다. 가치란 이런 것이다. 무지는 청년에 국한된 이야기인가. 우리의 일상 자체가 무지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이리 물으면 금은보화가 다 등장할 것이다. 한데, 땡이다. 정작 중요한 건 사소하고 평범한 것이다.
건강은 어떤가. 삶에 허덕이다 보면 건강은 뒷전이다. 돈 벌려, 승진하려,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 발싸심한다. 현대인의 삶은 곧 무지의 삶이다. 어느 날 문득, 깨어나면 병든 몸과 마음이다. 그제서야 평범함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가족도 마찬가지. 평소엔 작은 일로 아옹다옹한다. 그러다 심각한 문제가 생겨 평온이 깨지면 일상의 소중함을 자각한다.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시간이라는 것도 매한가지다. 인간은 한시적 존재. 끽 해야 100년이다. 째깍 째깍 한순간, 한순간 종말을 향해 간다. 삶의 가치는 곧 시간에 있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나 삶의 방편을 구하는 데 써 버린다. 무지 중에 최악의 무지다.
시간의 몰각이 국가 차원이라면 심각하다. 해방 이후 반 세기 만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 우린 한강의 기적이라 자찬했다. 잠시 들떠 있는 순간 모든 게 멈춰 버렸다. 문민정부 이후 25년, 긴 시간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0년, 대한민국의 역주행은 아찔하다. 아륀지 정권, 고소영 내각, 747공약, 쌀 직불금, 해수부 과기부 정통부 폐지와 IT 추락, BBK사건, 쇠고기 시장 개방, 부의 낙수효과와 부자 감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폐기, 비핵개방 3000과 선제 타격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금강산 관광객 피살, 마스크법, 야간집시법, 인터넷 실명제, 미디어법, 세종시 수정안, 기업 프렌들리와 파견근로법, 4대강, 동남권 신공항….
역사교과서·NLL 논쟁, 국정원 대선 개입, 채동욱 사건, 고독사 절망사 패륜범죄,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사자방 비리와 성완종 리스트,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합의, 한진해운 파산, 문화융성과 블랙리스트, 담뱃세 소주세 소득세 인상, 4대 개혁, 정윤회와 문고리 게이트, 최순실 게이트, 대통령 탄핵….
대충 적어도 이렇다. 하나하나에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목록이 남긴 것 무엇인가. 분열과 갈등, 상처다. 죽자 살자 싸웠지만 한 움큼의 가치도 없다. 생각이 부족한 탓이다. 무지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5개월을 맞았다. 기대는 크지만 아직 변화는 미미하다. 인선 시비로 조각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국정교과서 폐지, 5·18 재조명 등 일부 진전이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정책은 옥신각신 중이다. 변화의 핵심은 개헌. 지상 과제지만 여야 간 이견이 첨예해 벌써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도 한시가 급하지만 진전이 더디다.
이런 와중에 북핵 대응과 이명박 정권 때의 적폐 청산을 두고 대립각이 극심하다. 여당이 댓글 공작을 고리로 전전 정권을 공격하고, 야당은 죽은 노무현 대통령을 건드리고 있다. 적폐 청산과 부관참시…. 또다시 과거사를 둘러싼 정치 국감으로 시간만 낭비할 판이다. 전술핵이니, 핵무장이니 북핵 대응을 놓고도 국론이 갈린다. 갖가지 개혁 입법과 12월의 예산결산 국회도 난항이 예고된다.
여당의 개혁 몰아치기와 야당의 저항은 해법이 없다. 특히나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말은 혁신이지만 친박계 청산도 못 했다. 지방선거는 전략 공천으로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인적 청산은 필요하지만 자기 사람 심기로 비친다. 물 관리 일원화를 거부하는 것도 반환경적이다. 복지예산 증액, 소득주도 성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어느 것 하나 예스가 없다. 모든 게 반대, 반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또다시 5년을 허송세월할 수밖에 없다. 북핵을 둘러싼 미중의 패권 전쟁 와중에 여야가 극심하게 대립하면 대한민국이 떠내려간다. 4차산업, 4차산업 하지만 이대로라면 2류 국가로 전락한다. 정치, 경제가 뒤틀리면 사회라고 온전할까.
모두가 정치적 셈법 탓이다. 여권은 야당 고립화를 포기해야 한다. 정권마다 추진했지만 성공한 적이 없다. 말만 협치가 아니라 정당별 순회 정상회담이라도 가져 보라. 한 번에 안 되면 열 번 하면 어떤가. 야당도 합리적 반대와 대안 제시로 전환해야 한다. 나는 반댈세. 그건 답이 아니다. 참 가치를 잃어버리고, 무지에 몸을 맡기며, 국민의 안정을 해치고, 시간을 허비하면…. 그 끝은 공멸이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