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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경제 항산항심] 재벌총수의 사생활과 오너리스크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
  •  |   입력 : 2024-06-17 19:23:5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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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의 화제는 단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씨의 이혼이다. 재계 랭킹 2위 총수의 이혼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역대급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이 더 큰 관심사다. 사실 수십 년 결혼생활을 해온 재벌 총수의 이혼일지라도 어디까지나 사생활 영역이다. 때문에 남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요즘 말로 오버다.

하지만 재벌 총수의 사생활이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단순히 사생활로만 여겨야 할까. 법원은 항소심에서 최 회장에게 무려 1조3808억 원이라는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재벌 총수라 할지라도 이런 정도의 현금을 당장 조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 회장도 개인 재산이나 현금이 없으면 본인 소유의 회사 주식을 처분해야 할 처지다.

재벌닷컴 집계 결과 지난 5월 말 기준 최 회장의 상장사 보유 주식평가액은 2조3000억 원 안팎이다. 불행하게도 최 회장이 가진 개인 지분은 지주회사인 ㈜SK 17% 정도를 빼면 거의 없다. 재산분할금 마련을 위해 팔면 본인 명의의 지분은 절반 정도가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만약 주가가 하락이라도 하면 최 회장의 지분은 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 등락과는 상관없이 최 회장의 지배력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자칫 한국 재계 역사에서 총수의 사생활로 대주주 지배력이 위험에 처하는 첫 사례가 될지 모를 일이다.

과거 오너리스크는 총수의 투자 결정 오판이나 횡령배임과 같은 경제적 사건이 많았다. 물론 총수 일가족의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가 위험에 처한 사례도 없지 않다. 지금도 상당수 재벌 총수와 재벌가 내부에서 이런 문제로 회사 경영이 차질을 빚는 곳이 여럿이다. 최근에는 노조와의 갈등으로 총수가 사법처리를 받아 경영공백이 생긴 곳도 있고, 일부 재벌 총수는 임직원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나 총수직 사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곳도 있다. 넓게 보면 이런 사례들은 기업의 경영과 관련성이 있는 경제적 사건의 오너리스크라는 범주에 든다.

헌데 요즘에는 재벌 총수의 사생활이 중대한 오너리스크로 등장했다.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았을 경우 사정이 다를 수 있겠지만 결혼 후 큰 부를 쌓은 자수성가 오너라면 이혼하면 배우자에게 최대 절반의 재산을 줘야 한다.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이 과거와 달리 법원의 엄격한 판결이 늘어나고 있어 경영권까지 뒤흔드는 요인이 된다는 얘기다.

재벌 총수의 사생활 문제가 오너리스크로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재벌 총수의 외도나 일탈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을지언정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재벌의 가족사를 보면 총수의 외도와 혼외자가 적지 않다. 후일 이복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이 위험에 처한 경우는 있었지만 적어도 총수의 이혼은 많지 않았다. 설사 이혼을 하더라도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명예가 상처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거의 모든 정보가 대중에게 공개되고 법적으로도 배우자의 귀책 여부가 엄격해졌다.

최근 재벌가에서 이혼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재벌가 신세대의 반란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재벌가의 혼인 풍속도는 기업의 보호막을 위한 금력이나 권력을 택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많았다. 재벌가 결혼은 대부분 당사자의 뜻보다는 집안의 결정이나 강요가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재벌가의 신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가문이나 명망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한다.

그렇더라도 재벌가 사람들의 사생활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좀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상식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재벌 총수는 기업 내부에서는 수많은 임직원을 대표해 통솔하는 위치에 있고 외부적으로는 많은 국민의 주목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돼야 하는 노블레스의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진정한 리더는 항상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자제하는 게 중요하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리더를 믿고 따를 사람은 없다. 이것은 비단 재벌 총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지도층이 가져야 할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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