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긴 둑에 풀빛 짙어지는데(雨歇長提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 남포에서 임 보내니 슬픈 노래 일렁인다.(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 “대동강 저 물은 언제 다 마르랴 (大同江水何時盡) /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 보태누나.(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유명한 정지상(?~1135)의 시 ‘임을 보내며(送人)’로 ‘동문선’ 권 19에 수록돼 있다. 그는 장원급제를 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그리고 묘청 등과 함께 평양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묘청이 평양에서 모반을 일으키자 토벌당함에 앞서 김부식에 의해 그는 먼저 처형됐다. 정지상의 삶은 그렇게 끝났지만, 그의 시는 1000년 동안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위 시는 작품성이 뛰어나고, 널리 애송된 덕에 평양 최고의 누각인 대동강가 부벽루에 걸렸다. 부벽루는 중국의 사신들이 오면 연희가 베풀어지던 곳인데, 그들에게 내놓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었던 누각이다. 그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부벽루에 관해 느낀 자부심도 알 수 있다.
정지상이 쓴 이 시는 이별을 노래한 작품이다. 봄날의 이별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잘 있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가면 슬픔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화려한 봄볕에 가고 없는 사람에 대한 공허함이 더욱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2구의 남포는 평양 감영에서 남쪽으로 10리 떨어진 대동강 하류에 있던 포구다. 3, 4구에서는 이별의 눈물이 대동강 물에 보태져 마를 날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대동강가에서는 이별이 많았으리라.
당시 이별 노래인 3, 4구가 불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면서 부르는 노래로 이해된다. 이 이별가가 울려 퍼져 이 시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이다. 그 노래의 곡조는 매우 슬퍼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가 끊어질듯 하게 했으리라.
오늘 차산(茶山)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대동강아 내가 왔다 / 부벽루야 내가 왔다/ … 울면서 떠난 길을 돌아왔다고 ~”라고 나훈아의 노래 ‘대동강 편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봄날에 들려온 그 노래에서 정지상이 남긴 위의 시가 연상됐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