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踏靑興已狂·답청흥이광
봄빛이 늙고 병든 자를 업신여기니(春光欺老病·춘광기노병) / 계절의 풍물이 애간장을 녹이네.(節物惱心腸·절물뇌심장) / 여린 미나리국 하얘서 사랑스럽고(白愛芹羹細·백애근갱세) / 향긋한 쑥떡이 파래서 어여쁘네.(靑憐艾餠香·청련애병향)/ 술자리 열면 손님이 곧 당도하리니(開筵賓欲到·개연빈욕도) / 술 구하느라 여종이 먼저 바쁘네.(沽酒婢先忙·고주비선망)/ 내일은 바로 삼월삼짇날(明日重三是·명일중삼시) / 답청의 흥취에 벌써 미칠 듯하네.(踏靑興已狂·답청흥이광)
서거정(1420~1488)이 삼월 삼짇날을 읊은 시로, 그의 문집인 ‘사가시집(四佳詩集) 권31에 실려 있다. 오늘이 음력 3월 3일인 삼월삼짇날이다. 지금은 잊힌 명절이지만, 과거에는 1월 1일 설날, 5월 5일 단오, 9월 9일 중양절과 함께 매우 큰 명절이었다. 삼짇날은 답청일(踏靑日)이라고도 하며, 들에 나가 파랗게 난 풀을 밟고 놀던 풍속이 있었다.
이날 조상 사당에 화전을 올렸고, 화전을 장만하지 못하면 쑥떡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중국 역사책 ‘송사(宋史)’의 ‘고려전(高麗傳)’에는 고려 사람들이 삼짇날에 쑥으로 물들인 떡을 식품 중 으뜸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성현(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삼짇날에 사람들이 모두 들로 나가 놀았다고 한다.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거나 꽃술을 담가 마시고, 새로 돋아난 쑥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고 적혀있다. 삼짇날의 대표적인 음식이 화전과 쑥떡이었다.
이규경(1788~미상)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진달래 국수인 두견화면(杜鵑花麵)도 해 먹었다고 한다. 진달래꽃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진나라의 왕희지가 42인 명사와 노닐면서 지은 ‘난정기(蘭亨記)’도 바로 삼짇날이었다. 풍류를 아는 시인들이 어찌 이날 집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 두보도 ‘여인행(麗人行)’에서 삼짇날의 풍속을 읊었다.
요즘은 기온이 올라가 진달래꽃이 져버려 삼짇날 화전을 부쳐 먹을 수 없다. 차를 가꾸는 필자는 차산(茶山)을 오르내리며 진달래꽃을 따 먹었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