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말했다. “낭군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죽는 것은 천명이자 제 소원이기도 합니다. 당신께는 좋은 일이고, 제 가족에겐 복이며, 백성에게는 기쁜 일입니다. 한 번 죽으면 다섯 가지 이익을 얻으니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해 절을 짓고 불도(佛道)를 강론해 좋은 업보를 얻게 해 주신다면 당신의 은혜는 더없이 클 겁니다.”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女曰: “郎君無有此言. 今妾之壽夭 蓋天命之 亦吾願也. 郎君之慶也, 予族之福也, 國人之喜也. 一死而五利備 其可違乎? 但爲妾創寺 講眞詮 資勝報 則郎君之惠莫大焉.” 遂相泣而別.(여왈 : 낭군무유차언. 금첩지수요 개천명지 역오원야. 낭군지경야, 여족지복야, 국인지희야. 일사이오리복 기가위호? 단위첩창사 강진전 자승보 즉낭군지혜막대언 수상읍이별)
위 글은 알다시피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과 범 처녀의 사랑(金現感虎)’의 일부분이다. 신라 때 해마다 이월이면 여드레부터 보름날까지 남녀가 흥륜사(興輪寺)에서 탑돌이를 하며 복을 빌었는데, 원성왕 때 김현(金現)이란 남자가 탑을 돌았다. 어떤 처녀가 그의 뒤를 따라 탑돌이를 하였는데, 둘은 마음이 맞아 정을 통했다. 그런데 처녀는 알고 보니 호랑이였다. 처녀에게는 오라버니가 셋 있었는데 하늘이 이들의 악행을 미워했다. 이들 오라버니의 죄를 처녀가 대신 짊어지고 가겠다며, 모르는 사람의 손에 죽느니 하룻밤이지만 부부의 인연을 맺은 터이니 김현에게 죽겠다고 말했다. 처자가 호랑이 모습으로 되돌아가 저자에 나가서 사람들을 좀 상하게 하면, 임금이 저를 잡는 사람에게 벼슬을 내릴 것이니 서방님이 나서라고 하고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고 숲으로 가 낭군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22세로 승과에 장원급제한 일연(一然·1206~1289) 스님은 1283년 승려의 최고 지위인 국존(國尊)에 책봉되었다. 1277년(충렬왕 3년)부터 1281년까지 충렬왕의 명에 따라 경북 청도 운문사에 있었는데, 이때 ‘삼국유사’를 집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즘 필자가 운영하는 하동 화개 목압마을 목압서사의 인문학특강에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강독하고 있어 위 설화를 소개해본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