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69> 그림이 표현 못 할 풍경을 묘사한 강극성의 시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만 들릴 뿐(但聞柔櫓聲·단문유로성)

  • 조해훈 시인
  •  |   입력 : 2021-05-04 18:53:00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강에는 해가 늦도록 떠오르지 않고(江日晩未生·강일만미생) / 아득히 십 리에 안개가 자욱하네.(蒼茫十里霧·창망십리무) / 부드럽게 노 젓는 소리만 들릴 뿐(但聞柔櫓聲·단문유로성) / 배 가는 곳은 보이지 않네.(不見舟行處·불견주행처)

위 시는 16세기 조선의 문사인 취죽(醉竹) 강극성(姜克誠·1526~1576)이 읊은 시 ‘강가의 정자에서 아침에 일어나 우연히 읊조리다(湖亭朝起偶吟·호정조기우음)’이다. 강극성은 강희맹(姜希孟)의 고손(高孫)이며, 김안국(金安國)이 그의 외조부다. 이 시를 급하게 읽지 말고 고요히 음미해보자. 시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강가 정자에 앉아 있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는데, 노 젓는 소리가 들린다. 안개가 너무 짙어 배는 보이지 않는다. 시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큰 강에 보이는 건 안개뿐인데 그 속에서 노 젓는 소리가 삐걱 삐걱대면 무아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강을 보는 시인은 절로 신선이 된다. 마지막 행에서 이런 상황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보이지 않는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없을 때가 있다. 위 시처럼 노 젓는 소리와 보이지 않지만 천천히 가고 있을 배의 모습이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안개밖에 없다. 시는 보이지 않는 것도 그린다.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삐걱거리는 뱃소리도 그릴 수 있다. 이것이 그림과 다른 시의 묘미다. 시는 그림이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의 의미까지 그려낸다.

조선 후기에 홍만종은 위 시를 시평집인 ‘소화시평(小華詩評)’에 수록했다. 그가 어느 날 새벽 강가 정자에 앉아 있다가 안개 속에서 삐걱대는 노 젓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서야 홍만종은 위 시가 드물게 진경(眞景)을 그린 빼어난 작품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그림을 그리듯이 지은 작품이었다.

청나라 때 문인 심덕잠(沈德潛)은 ‘명시별재(明詩別栽)’를 편찬하면서 조선의 뛰어난 작품으로 위 시를 소개했다.

갈수록 어지럽고 복잡해지는 세상이다 보니, 독자들께서 이 시 속에 빠져들어 잠시나마 자신을 잊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4. 4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5. 5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6. 6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7. 7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8. 8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9. 9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10. 10[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4. 4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5. 5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6. 6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7. 7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8. 8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9. 9이 대통령, 김지용 첫 출근에 "피아구별 없이 엄중 수사하길"
  10. 10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 1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2. 2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3. 3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4. 4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5. 5‘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8. 8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9. 9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10. 10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6. 6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7. 7고성서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등산축제
  8. 8“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9. 9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10. 10부산 금정구, ‘야생화 및 국화 분재 전시회’ 개최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