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杜門端坐萬番讀·두문단좌만번독
문을 닫고 가만 앉아 일만 번을 읽었으니(杜門端坐萬番讀·두문단좌만번독) / 진한(秦漢)과 당송(唐宋) 이상의 글이었네.(漢宋唐秦以上文·한송당진이상문) / ‘백이전’의 기괴한 문체 가장 좋아했으니(最嗜伯夷奇怪體·최기백이기괴체) / 빼어난 기운 표표히 구름 위로 솟구치네.(飄飄逸氣欲凌雲·표표일기욕릉운)
위 시는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의 ‘고문초라는 책에 붙이다(題古文抄冊)’란 작품으로, 문집인 ‘백곡집(柏谷集)’에 있다. 그가 일만 번 읽었다는 ‘고문초’는 명나라 초기 대학자 방효유(方孝儒·1357~1402)가 쓴 책이다. 방효유는 조선으로 치면 사육신 같은 인물이다.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 첫머리에 실린 ‘백이열전’을 무려 1억1만3000번 읽었다는 것으로 잘 알려진 문사이다. 이때 1억은 10만을 가리키므로, 실제로 그가 읽은 횟수는 11만3000번이었던 셈이다. 시의 셋째 구에서 알 수 있듯 그가 가장 아꼈던 글이 ‘백이열전’이었다.
그의 조부는 임진왜란 때 진주 대첩을 이끈 김시민이고, 부친은 경상도 관찰사(지금의 도지사)를 지낸 김치(金緻)이다. 하지만 김득신은 어릴 때부터 아주 노둔해 10세 때 처음 부친에게 ‘사략(史略)’을 배웠으나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하지만 전설적인 부지런함으로 39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다시 20년 뒤인 59세 때에야 겨우 대과에 급제해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그가 1670년에 쓴 글 ‘내가 읽은 책(讀數記)’을 보면 자신이 평생 걸쳐 읽은 책 중 특별히 반복해 1만 번 이상 읽은 36편의 문장을 나열하고, 각 편을 읽은 횟수와 읽은 이유를 밝힌다. 그러면서 글의 끝에 “만약 뒤의 자손이 내 ‘독수기’를 보게 되면 내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라고 썼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과 독서 편력을 보여준 독서광이었다. 독서를 잘 하지 않는 요즘 사람들이 본다면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통해 조선 시대 선비들의 독서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동시에 김득신은 다른 사람에 비해 다소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꾸준한 노력을 하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인간 승리를 보여준다.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