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말에 ‘빌려 간 책은 언제나 되돌려주기는 더디고 더디다’ 했지만, ‘더디다’는 말은 1, 2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강(史綱)’을 빌려드린 지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되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벼슬할 마음을 끊고 강릉으로 아주 돌아가 그 책이나 읽으면서 소일하고자 합니다. 감히 사룁니다.”
古人言 ‘借書常送遲遲’之遲者 指一二年也. ‘史綱’之借上 星紀將易. 幸擲還爲望. 鄙生亦絶志仕宦 大歸江陵 欲資此以敵閑也. 敢白.(고인언 ‘차서상송지지’지지자 지일이년야. ‘사강’지차상 성기장이. 행척환위망. 비생역절지사환 대귀강릉 욕차차이적한야. 감백.)
위 글은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이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보낸 편지 ‘여정한강 계묘팔월(與鄭寒岡 癸卯八月)’로,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 20에 있다. ‘성소(惺所)’는 허균의 다른 호이다. ‘부부고(覆瓿藁)’는 자기 저서를 후세 사람이 장 항아리 덮개로 쓸 것이라고 겸양조로 한 말이다. 허균은 독서광이자 책 수집광이었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며 늘 책을 가득 사 왔다. 한강이 ‘사강’을 빌려 가선 10년이 넘게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허균은 이 편지를 30대 초반인 1603년 8월 썼다. 춘추관 편수관(編修官)에서 해직돼 있을 때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음을 절감하고 고향 강릉으로 돌아가 역사서인 ‘사강’을 읽으며 은거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책을 귀하게 여긴 인물로 손꼽히는 이가 중국 명나라 때 범흠(范欽)이다. 그는 “집안의 서책을 집 밖으로 반출하거나 빌려주는 사람은 족보에서 빼버리겠다”는 유훈을 남겼다. 어떤 이는 범흠이 조성한 유명한 장서각인 천일각(天一閣)의 책을 보기 위해 딸을 시집보냈으나, 책 열람은 실패했다고 전한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지금도 있는 천일각의 장서는 범흠 때 7만 권에서 현재 1만3000여 권으로 줄었다고 한다.
필자의 집안도 경북 일원에서 책을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6·25 전쟁 때 대부분 소실됐다. 그나마 필자의 어리석음으로 남아있는 고서와 부친 및 필자의 도서도 거의 잃어버렸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