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濛濛雨勢似盆傾·몽몽우세사분경
우렛소리 북을 울려대듯 요란하고(隱隱雷聲作鼓鳴·은은뢰성작고명) / 빗줄기 독을 엎은 듯 퍼부어대네(濛濛雨勢似盆傾·몽몽우세사분경)./ 잠시 개자 뜰의 더위와 먼지 사라져(少晴庭院炎塵盡·소청정원염진진) / 소매 가득 서늘함에 뼈조차 상쾌하네(滿袖微凉骨欲輕·만수미량골욕경).
벼슬하지 않고 경북 안동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지어 은거했던 16세기 학자 권호문(權好文·1532~1587)의 시 ‘소나기(驟雨)’로 그의 문집 ‘송암집(松巖集)’에 수록된 칠언절구이다. 우렛소리가 둥둥둥 북을 치는 것처럼 요란하다. 독을 엎어놓은 듯 빗줄기가 사납게 퍼붓는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갠다. 그러자 더위도 한풀 꺾였고 먼지가 사라진 듯 온 세상이 깨끗하다. 온몸으로 스미는 시원한 기운에 뼛속까지 상쾌한 느낌이다. 선비들은 비가 내리는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시로 읊었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빗소리를 즐기려고 연꽃이나 오동나무, 파초 등 잎이 큰 식물을 심었다.
‘파초우성(芭蕉雨聲)’, 즉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선비들은 좋아했다. 백거이는 ‘밤비(夜雨)’에서 ‘창밖에 밤비 내리는 것을 알겠구나(隔窓知夜雨·격창지야우) / 파초 잎에서 먼저 소리가 들리니(芭蕉先有聲·파초선유성)’라고 했다. 파초를 심고 그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좋아한 서유구(1764∼1845)는 집에 ‘우초당(雨蕉堂)’ 현판을 걸었다. 소나기라도 내려 그치면 시원하지만 그도 아니면 더위를 피해야 한다. 가장 뛰어난 피서법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일이다. 17세기 시인 정칙은 ‘여름날 병이 들어(夏日病後·하일병후)’란 시에서 ‘마음이 고요하면 절로 시원함이 생긴다네(心靜自生凉·심정자생량) / 꼭 차디찬 얼음물 찾을 것 있겠는가(不必求冰冷·불필구빙랭)’라고 읊었다.
필자가 지리산 벽소령과 삼신봉을 병풍 삼아 사는 이곳에는 여름이면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비가 퍼붓곤 한다. 지난해에는 아래쪽인 화개장터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옛날 사람들은 빗소리를 즐기기도 하고 나름대로 피서를 했다. 하도 더워 자료를 뒤지다 보니 무더위와 관련한 한시가 많았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