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밝은 한밤 다시 시간은 긴데(月明伴夜更籌永·월명반야갱주영)/ 정원 가득 가을 드니 귀뚜라미 구슬프게 우네.(秋到深園蟋蟀哀·추도심원실솔애)/ 남은 꿈 다 못 꾸고 베개 밀쳐 일어나(殘夢未成推枕起·잔몽미성추침기)/ 비단 부채 자주 들어 창턱을 두드리네.(頻將紈扇拍窓隈·빈장환선박창외)
규창(葵窓) 이건(李健·1614~1662)의 칠언절구 ‘귀뚜라미(蟋蟀·실솔)’로, 그의 문집인 ‘규창집(葵窓集)’에 수록돼 있다.
달빛이 환한 깊은 밤이다.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가는가. 잠이 오지 않아 마음을 다잡기 어려운데 귀뚜라미가 구슬프게 운다. 초저녁 선잠에 아련하게 꿈속을 헤매었다. 하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어 베개를 밀쳐버리고 벌떡 일어나 앉는다. 부채를 들어 창틀을 두드리며 귀뚜라미의 울음을 그치게 해보건만, 잠시뿐 소리는 다시 커진다.
그가 잠이 깬 이유는 다만 귀뚜라미 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굴곡지고 스산한 삶이 생각난 탓일지도 모른다.
그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1588~1628)의 셋째 아들이다. 선조의 손자이지만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다. 이건이 12세 때인 1625년에 부친이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강원도 간성과 원주로 유배되었다. 이어 1628년에는 유효립의 역모에 휘말려 진도에 유배되어 그해 5월, 41세의 나이로 적소에서 죽었다.
이 사건으로 같은 해에 이건을 포함한 온 가족이 역신의 자손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635년 제주도에서 이배되었다가 1637년 10년 만에 귀양에서 풀려났다. 이후 이건은 1662년 겨울에 병을 얻어 그해 12월 24일 49세로 생을 마감했다. 위 시는 그가 유배에서 풀려나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이건은 유배에서 돌아와 조그만 서실을 마련하여 서책을 읽으면서 세상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를 짓고 글씨와 그림에만 힘썼다. 그리하여 글씨와 시, 그림에 능하다 해서 세상 사람들이 이건을 삼절(三絶)이라 일컬었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