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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82> 요즈음 계절, 한 문사의 모습과 이별을 읊은 시

청산만이 내 가는 길 전송하여 주는구나(只有靑山送我行·지유청산송아행)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06-26 18:55:55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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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위 비 퍼부어 잔물결 일고(連江驟雨動輕瀾·연강취우동경란)/ 가는 베옷 비에 젖어 유월인데도 춥네.(細葛初霑六月寒·세갈초점육월한)/ 지친 나그네 행장에도 좋은 일 많으니(倦客行裝多勝事·권객행장다승사)/ 말 앞의 하인들이 연잎 모자 다 쓴 것이라네.(馬前僮僕盡荷冠·마전동복진하관)

강항(姜沆·1567~1618)의 시 ‘黃龍江遭雨, 以荷葉裏奴頭’(황룡강조우, 이하엽리노두·황룡강에서 비를 만나 연잎으로 하인이 머리를 감싸다)로, 그의 문집 ‘수은집(睡隱集)’에 있다. 강항은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하다 일본으로 붙잡혀 갔다 탈출한 문인이다.

비가 퍼붓자 강의 물결이 일렁인다. 6월인데도 베옷이 다 젖어 춥다. 행색은 초라하지만 볼만한 것이 많다. 하인 녀석들은 비를 맞지 않으려고 연잎을 말아 머리에 쓰고 장난치며 빗속을 간다. 시인은 말 위에서 강물 위로 떨어지는 요란한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 하인 녀석들이 들쭉날쭉 머리에 쓴 연잎 고깔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본다. 그런 모습이 눈에 훤하게 그려지는 게 위 시의 매력이다. 위 시를 잇는 듯한 작품이 있다. 정지승(鄭之升·1550~1589)의 ‘留別’(유별·남겨두고 떠나며)이다. 여린 풀과 꽃이 하늘대는 물가의 정자에는(細草閒花水上亭·세초한화수상정)/ 짙은 수양버들 그림 같이 봄 성을 가렸네.(綠楊如畵掩春城·녹양여화엄춘성)/ 작별의 양관곡을 불러주는 사람 없어(無人解唱陽關曲·무인해창양관곡)/ 청산만이 내 가는 길 전송하여 주는구나.(只有靑山送我行·지유청산송아행)

여린 풀 고운 꽃 하늘대는 물가 정자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대에게 한잔 술 다시 권하네.(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서쪽 양관 나서면 아는 이도 없으리니(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라고 한 왕유의 시 ‘陽關曲’(양관곡)을 불러주는 벗도 없다. 혼자 떠난다. 둘러선 청산만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각박한 심성을 가진 이라도 소낙비 내리는 강물을 보면 감상에 젖는다. 엊그제 필자는 섬진강변 찻집에 앉아 강물 위로 비가 퍼붓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았다.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려주는 건 저런 강과 산, 자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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