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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1> 신라 시대 박인범이 중국 용삭사에서 읊은 시

평생 시름에 취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깨는구나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07-26 19:56:47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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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年愁醉坐來醒·백년수취좌래성

훨훨 나는 듯한 신선의 집이 푸른 하늘 속에 있어(翬飛仙閣在靑冥·휘비선각재청명)/ 월궁의 피리소리와 노래가 또렷이 들리네.(月殿笙歌歷歷聽·월전생가력력청)/등불은 반딧불처럼 흔들리며 새의 길을 밝히고(燈撼螢光明鳥道·등감형광명조도)/ 험준한 길은 무지개처럼 휘어 돌아 바위 문에 이르네.(梯回虹影到岩扃·제회홍영도암경)/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은 데 언제나 그칠까?(人隨流水何時盡·인수류수하시진)/ 대나무만은 쓸쓸한 산을 감고도 만고에 푸르구나.(竹帶寒山萬古靑·죽대한산만고청)/ 옳고 그름, 공과 색의 이치를 물어보았더니(試問是非空色理·시문시비공색리)/ 평생 시름에 취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깨는구나.(百年愁醉坐來醒·백년수취좌래성)

위 시는 통일신라시대 박인범(朴仁範·?~?)이 지은 ‘涇州龍朔寺閣兼柬雲栖上人’(경주용삭사각겸간운서상인·경주 용삭사에서 운서상인에게 주며)로, ‘동문선’ 권12에 있다. 박인범은 당나라에 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르는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했고, 시를 잘 지어 이름을 알렸다. 신라로 돌아와서는 한림학사·수예부시랑 등을 지냈다. 898년(효공왕 2)에 고승 도선(道詵)이 입적하자 왕명으로 비문을 지었다.

위 시는 그가 당나라에 있을 때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와 만나 잔치하였다는 요지(瑤池)인 경주(감숙성 경천현) 용삭사에서 운서 스님에게 지어준 것이다. 용삭사는 장안에서 먼 오지에 있었다. 시는 용삭사 주위 승경과 인생의 무상함을 불법의 진리에 비유해 읊고 있다. 1∼4구에서 용삭사의 선경과 주변 지형의 험난함을 묘사했다. 5·6구에서는 시간의 무한성에 비추어 인간의 무상을 표현했다. 7·8구에서는 그러므로 시비와 공색의 이치를 깨달아야 함을 강조한다.

최치원은 신라인을 발탁한 당나라 고대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상(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에서 “박인범은 고심하여 시를 지었다(朴仁範苦心爲詩)”고 했다. 필자의 글을 읽는다는 한 독자가 “신라 시대에 시를 지은 문사는 최치원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했다. 최치원에게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박인범의 시가 다행스럽게도 ‘동문선’에 10수 전하고 있어 한 수를 택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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