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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16> 가난한 살림이지만 여유로운 삶 노래한 정민교

장차 백 년 인생 살다 가리라(且作百年歸·차작백년귀)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11-01 19:01:10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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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에 찬 서리 내리니(九月寒霜至·구월한상지)/ 남으로 기러기 차츰 날아오네.(南鴻稍稍飛·남홍초초비)/ 나는 논에서 벼를 수확하고(我收水田稻·아수수전도)/ 아내는 목면옷을 짓는다.(妻織木綿衣·처직목면의)/ 모름지기 막걸리를 많이 빚으리니(白酒須多釀·백주수다양)/ 국화꽃은 는 절로 많이 피네.(黃花自不稀·황화자불희)/ 애오라지 한 몸 숨길만 하니(於焉聊可隱·어언료가은)/ 장차 백 년 인생 살다 가리라.(且作百年歸·차작백년귀)

위 시는 18세기 위항시인 정민교(鄭敏僑·1697~1731)의 ‘稻歸’(도귀·나락을 걷고 돌아오면서)로, 그의 문집 ‘한천유고(寒泉遺稿)’에 들어있다. 그는 시로 이름높았는데 호남의 한천(寒泉)에서 농사짓고 살았다. 자신은 나락을 거둬들이고 아내는 목화솜으로 옷을 짓는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국화 곁에서 술도 한잔 마실 요량이다. 막걸리를 푸짐하게 빚을 생각이다.

27세에 진사가 된 그는 조선 후기 대표적 여항시인인 정래교(鄭來僑·1681~1759)의 아우다. 평안도관찰사를 지낸 홍석보가 그를 서기(書記)로 삼아 곁에 두었고, 조현명은 경상감사로 가며 그를 데리고 가 서로 시도 주고받으며 자녀 교육도 맡겼다. 그런데 그곳에서 학질을 앓다 35세로 세상을 버렸다. 백 년 동안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리라 다짐한 그가 아니던가. 위 시는 죽기 전 가난할망정 아내와 다정하게 농사지으며 살던 때 지었을 것이다. 양반이 아닌 중인신분인 여항시인이어서인지 그는 곤궁한 백성의 삶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러한 시를 많이 지었다. 관서지방 안찰사 밑에서 세금 걷는 일을 할 때 궁핍한 백성에게서 차마 세금을 거둘 수 없어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일화도 있다. 정민교는 군정(軍丁)의 폐해를 고발하는 시 ‘군정탄(軍丁歎)’도 썼다. 그 시에서 “군적에 가짜 이름을 남겨 범하고 혹독하게 하면서(只存虛名混侵虐·지존허명혼침학)/ 죽은 백골에도 징수하니 더욱 참혹하구나(白骨之徵尤爲酷·백골지징우위혹)”며 삼정문란에 시달리는 백성의 삶을 잘 묘사했다. 목압서사를 찾은 손님들과 “중양절에 술을 한잔했느냐”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필자가 정민교를 화제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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