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이 이에 “(저의) 집안은 대대로 한(韓)나라에서 재상직을 맡았는데 한나라가 멸망하자 만금의 재물을 아끼지 않고 한나라를 위해 원수인 강적 진(秦)나라에 보복하여 천하를 감동시켰습니다. 지금 세치의 혀로 황제의 스승이 되어 만호(萬戶)의 봉을 받아 열후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것은 서민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원컨대 인간사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의 뒤를 따라 노닐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良乃稱曰: 家世相韓, 及韓滅, 不愛萬金之資, 爲韓報仇疆秦, 天下震動. 今以三寸舌爲帝者師, 封萬戶, 位列侯, 此布衣之極, 于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游矣.(양내칭왈: 가세상한, 급한멸, 불애만금지자, 위한보구강진, 천하진동, 금이삼촌설위제자사, 봉만호, 위열후, 차포의지극, 우량족의. 원기인간사, 욕종적송자유의.)
위 문장은 ‘한서(漢書)’의 ‘장량전(張良傳)’에 나온다. 적송자는 신농(神農) 때 비를 다스린 우사(雨師)로, 곤륜산에 입산하여 신선이 됐다는 인물이다. 장량(張良·약 B.C.250~B.C.186)의 가문은 5대에 걸쳐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재상을 지내는 등 귀족이었다. 장량의 자(字)가 자방(子房)이었기에 흔히 ‘장자방(張子房)’으로도 불린다.
그는 유방의 책사가 돼 초한(楚漢)의 전쟁 기간 “6국의 후대를 세우지 말 것, 영포·팽월과 연합할 것, 한신을 중용할 것” 등의 계책을 내놓았다.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漢) 왕조를 건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장량과 유방이 처음 만난 땅인 유(留)의 유후(留侯)가 됐다. 특히 항우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鴻門之會)’에서 위기에 빠진 유방을 구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항우가 범증의 권유로 유방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장량이 계책을 써 유방이 번쾌를 데리고 무사히 도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장량이 진시황제를 살해하려고 습격했으나 실패하고, 하비에 은신하고 있을 때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서’를 물려받아 책략가가 되었다는 등 그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어제 주민과 함께하는 ‘명심보감’ 강의시간에 촉한(蜀漢)을 세운 유비와 그의 아들 유선에 대해 설명하다 장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