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모자 쓴 사공 불러 얘기 해보니(黃帽呼相語·황모호상어)/ 버들 물가에 배를 댈 것이라네.(將船泊柳汀·장선박류정)/ 앞머리에 물살 빠른 여울이 있어(前頭惡灘在·전두악탄재)/ 달밤에는 갈 수 없어서라네.(未可月中行·미가월중행)
위 시는 홍경신(洪慶臣·1557~1623)의 ‘강 길을 가며(江行·강행)’이다. 김달진의 ‘한국한시1’(민음사·1989)에 수록된 걸 인용했다.
홍경신은 1594년(선조 27) 별시로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623년(광해군 15) 정2품인 부제학에 올랐으나 같은 해 사망하였다. 요즘 같은 날 홍경신은 하루 종일 배를 타고 강을 내려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컴컴해졌다. 순간 배가 멈칫했다. 배를 탄 김에 달빛 받아 그대로 가고 싶었다. 사공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 이곳 나루에서 하루 묵고 가야겠다고 한다. 날도 어둡고, 앞에 물살 빠른 여울이 있어 밤중에는 위험해 더 갈 수 없다고 했다. 버들이 있는 강가엔 주막이 있다.
도리 없지 않은가. 버들가지 늘어진 강가에 사공·손님 가리지 않고 함께 배를 묶는다. 그는 생각한다. 오늘은 달빛 벗 삼아 강가 주막에서 하룻밤 자는구나. 선비 체면에 나루터주막에서 하룻밤 자는 게 쉽지는 않다. 독자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쩌겠는가. 필자라면 버드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저녁밥을 먹으며 막걸리도 주문하겠다. 뱃사공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겠다. 뱃사공은 경험이 많은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봄밤인 데다 강물은 철렁철렁 흐르는 소리를 내니 술맛이 더 날 것이다. 휴대전화도 없던 때이니 조급한 마음도 없다. 몸과 마음은 산과 강물 소리에 젖었다. 가끔 주모가 와서 한 마디씩 거들 것이다. “봄이 와도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아 먹고살기 어렵네요”라며, 우는 소리를 할지 모른다. 시인은 술기가 오르면 흐뭇한 화색이 돌 것이다. 당연히 생각에 잠길 게다. 달빛 안고 저 강물이 유장하게 흘러간다. 우리네 삶도 큰 장애 없이 유유하게 흐르면 좋겠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은 시기였을 것이다. 환로에 나간 문신들의 삶이란 정치라는 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