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91> 그림을 보고 시를 지었다는 고려 말 시인 이숭인

송화는 비를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7-25 20:26:42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松花含雨落繽紛·송화함우락빈분

이 산 저 산에 오솔길 나뉘어 있고(山北山南細路分·산북산남세로분)/ 송화는 비를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松花含雨落繽紛·송화함우락빈분)/ 도인은 우물물 길어 초가로 돌아가고(道人汲井歸茅舍·도인급정귀모사)/ 한 줄기 푸르스름한 이내가 흰 구름 물들이네.(一帶靑煙染白雲·일대청연염백운)

위 시는 고려 말 문인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시 ‘절집에 쓰다(題僧舍·제승사)’로, 그의 문집인 ‘도은집(陶隱集)’ 권3에 들어있다. 위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이 상상되지만,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청량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숭인의 스승 이색(李穡)은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고 칭찬하였다. 명나라 태조(太祖)도 이숭인이 찬한 표문(表文)을 보고 “표의 문사가 참으로 절실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숭인은 시와 글이 모두 우아한 품격(典雅·전아)이 있었다.

위 시는 그림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그림 내용이 짐작된다. 저 멀리 높은 산이 솟아 있고, 그 골짜기를 끼고 오솔길이 꼬불꼬불 나 있다. 솔숲에는 송홧가루가 노랗게 떨어져 있다. 승려 한 사람이 물을 길어 길을 따라 올라가고, 그 위에 작은 초가가 있다. 그 뒤쪽으로 흰 구름이 흘러가는데, 푸르스름한 이내가 한 줄기 피어오른다.

그림이 채색화인지, 묵화(墨畵)인데 시인이 시에 색상을 입혔는지 알 수 없다. 시에 등장하는 소재는 모두 색상을 가졌다. 승려는 풍경의 일부이다. 산수화에 사람이 없으면 좀 밋밋한 느낌이다. 시인은 이처럼 그림 바깥에서 그림 속 경치를 구경한다.

필자도 선경(仙境)을 감상하였다. 그제 비 내리는 가운데 하동 악양의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은 후 넓은 악양 들판과 섬진강, 맞은편 광양의 긴 산 능선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에 앉아 함께 차를 마셨다. 바깥 풍광이 맑다가 아열대지방 스콜처럼 비가 쏟아지니 산 강 들판이 모두 허연 안개에 가렸다. 비 그치니 거짓말처럼 다시 선명해졌다. 필자가 “풍경이 천하절경 같습니다”고 하자 모두 “무릉도원도 이처럼 아름답지는 않을 겁니다” 하고 호응하셨다. 이날 풍경은 이숭인이 본 그림보다도 더 순수한 서경(敍景)이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3. 3“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4. 4‘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5. 5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6. 6[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7. 7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8. 8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9. 9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10. 10“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3. 3[속보]우크라 외무 “한국 중요해…외교적 오해 해결바라”
  4. 4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5. 5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6. 6[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7. 7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8. 8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9. 9정동영 “DMZ 지뢰 사고, 불행한 일…평화공존 더 절실해져”
  10. 10전국 교정시설 수용률 126%…윤상현 “형사사법개편 앞두고 교도소 과밀 방치”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4. 4신한은행 해킹 서버서 “‘중국어 AI 침투도구’ 흔적 발견”
  5. 5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6. 6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7. 7리사이클링·항만운영·담수화…부산 미래산업 이끌 혁신기술
  8. 8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9. 9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우수학술 부문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일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6. 6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7. 7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8. 8“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9. 9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10. 10부산 동구, 돔구장 유치 협의체 출범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5. 5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6. 6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7. 7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8. 8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9. 9윤규성, 태권도 품새 금메달…한국 남자 개인전 3연패
  10. 10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속사권총 우승…한국 25번째 金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