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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93> 여헌 장현광이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쓴 시

독성(獨醒)의 정신 그리려고 큰 붓을 잡는다(欲寫醒懷用巨杠·욕사성회용거강)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8-01 18:52:52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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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집으로 해와 별을 창으로 삼고(乾坤爲屋日星牕·건곤위옥일성창)/ 다섯 산악을 평상으로 네 강을 항아리로 삼았다.(五嶽其牀四瀆缸·오악기상사독항)/ 중간 사이에 크게 취한 한 남자(中間大醉一男子·중간대취일남자)/ 독성(獨醒)의 정신 그리려고 큰 붓을 잡았다.(欲寫醒懷用巨杠·욕사성회용거강)

위 시는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시 ‘무제(無題)’로 그의 문집인 ‘여헌집(旅軒集)’에 있다.

장현광이 어떠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지 그의 정신세계를 잘 드러낸 칠언절구이다. 본 연재에서 장현광을 소개한 바 있다시피 그는 조선 후기 영남에 여헌학파를 성립한 큰 학자다. 넷째 행의 ‘성회(醒懷)’는 독성의 정신, 즉 홀로 깨어있는 정신이다. 아무리 혼란스런 세상에서라도 홀로 각성한다는 의미다. 굴원이 온 세상이 술에 취해 있지만 홀로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어부가’에서 말했던 의지와 같다.

경북 구미(인동) 출신 장현광은 23세 때인 1576년(선조 9)에 경명행수(經明行修·경학에 밝고 덕행을 닦은 사람)에 뽑혀 벼슬에 천거된 뒤 여러 차례 높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고사하거나 어쩔 수 없이 잠깐 벼슬에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는 세간의 영화에 초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독성의 정신을 평생 간직하겠다는 결연한 뜻을 세웠음을 읽을 수 있다. 대체로 한시는 제목을 보면 내용을 반 이상 짐작할 수 있는데 가끔 한시에 제목이 없다는 뜻의 ‘무제(無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게 있다. 후대 사람이 정리하면서 본래 제목을 잃어버려 그렇게 한 것도 있다. 시인 스스로 무제라고 붙인 한시도 있다. 이럴 경우 시를 해석하는 데 애로를 겪는다.

필자가 일간지 미술 담당 기자를 할 때 전시장에 가보면 무제라는 제목이 많았다. 작품들도 난해했다. 작가에게 물으면 “알아서 생각하시라”고 했다. 난감했다. 다행히 필자는 장현광을 주제로 강의한 적도 있고, 그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어 그나마 ‘무제’라고 된 위 시를 짐작해 해석할 수 있다. 경북 구미 칠곡에서 온 벗들과 대화하다 인동(구미) 출신 장현광에 대해 필자가 먼저 아는 체를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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