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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94> 보리밥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족하다는 17세기 시인 고용후

술 취해 육신 잊는 것 망설이지 않는다네(取醉忘形不復疑·취취망형불복의)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8-06 18:46:2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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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새끼 재잘거리는 여름날 지루한데(乳燕喃喃夏日遲·유연남남하일지)/ 농부는 비 맞으며 묵정밭 개간하고 있네.(耕夫帶雨墾荒菑·경부대우간황치)/ 가난한 집은 이곳저곳 작은 밭 부쳐 먹고(茅簷處處依三畝·모첨처처의삼무)/ 버들 늘어선 거리에는 때때로 꾀꼬리 우네.(柳巷時時啼一鸝·유항시시제일리)/ 개울물 앞에 대를 마구 꽂아 울타리 만들고(奮揷竹籬臨澗水·분삽죽리임간수)/ 밭에서 아욱 따와 새로 보리밥 지었네.(新炊麥飯採園葵·신취맥반채원규)/ 동이의 술 익어 친한 벗 찾아오니(瓦盆酒熟親朋至·와분주숙친붕지)/ 술 취해 육신 잊는 것 망설이지 않는다네.(取醉忘形不復疑·취취망형불복의)

고용후(高用厚·1577~?)의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빈 숲에 연기가 더디게 피어나네라는 시에 차운하다(次積雨空林煙火遲韻·차적우공림연화지운)’로, 그의 문집 ‘청사집(晴沙集)’ 권1에 있다. 시인은 초라한 농가에서 자족하며 살아간다. 보리밥 지어 아욱을 따와 국을 끓여 먹는다. 담근 막걸리가 익자 친한 벗이 찾아와 함께 마시며 취한다. 고용후는 이를 삶의 행복으로 여긴다.

고용후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이다. 고경명은 1591년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西人)이 제거될 때 파직돼 낙향했다. 임란이 나자 담양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웠다. 고경명과 두 아들이 이때 순절했다. 고용후는 셋째 아들로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진출한 뒤 아버지와 형들의 충의를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1631년 어떤 일들에 연루돼 영덕(盈德)에 유배됐다가 진주로 이배됐다. 이후 향리인 광주(光州)에서 가난하게 살며 여생을 마쳤다.

내일(8일)이 입추(立秋)이지만 폭염은 여전하다. 이 무더운 날씨에 그제·어제(지난 5, 6일) 하동 고전면 고읍성(古邑城) 아래 주성마을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 마을 강택환(69) 이장이 신라시대에도 있었다는 ‘배다리장(場)’ 부활을 꿈꾸며 매달 첫째 주 토·일요일 장을 처음 개설했다. 배다리장은 1970년대 초까지 왕성했던 하동지역 1번 장이었다고 한다. 정공채 시인과 정두수 작사가 형제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마을을 알리고, 옛 역사·문화를 되살리려는 좋은 생각이다 싶어 가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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