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07> 열심히 일하고도 야단만 듣는 소를 읊은 18세기 시인 강백

종일 저쪽 숲에서는 야단 소리만 들려오네(終日西林惡謳語·종일서림오구어)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9-19 18:37:33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소가 가면서 길가 곡식 뜯어 우물우물 씹는데(牛行欲齕路傍黍·우행욕흘로방서)/화내고 채찍 치니 오히려 머뭇머뭇 그리고 가네.(一怒一鞭猶吃去·일로일편유흘거)/해질 무렵 들어오니 부엌에선 아주머니가 야단을 치니(暮歸阿母廚中嗔·모귀아모주중진)/종일 저쪽 숲에서는 야단소리만 들려오네.(終日西林惡謳語·종일서림오구어)

위 시는 조선 후기 시인인 우곡(愚谷) 강백(姜栢·1690~1777)의 ‘산길을 가며(山行)’로, 그의 문집인 ‘우곡집(愚谷集)’에 들어 있다.

시인이 산길을 걷다 농부가 소를 몰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소는 길가의 곡식을 뜯어먹으며 갔다. 농부가 “이 놈, 그러면 안 돼”하며 채찍을 쳐도 듣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 일 마치고 집으로 가니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아주머니가 뭔가 못마땅한지 소에게 야단친다. 열심히 일하고도 소는 종일 지청구만 듣는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요즘 나락이 제법 누렇다. 필자도 어릴 적부터 소가 남의 논에 심겨진 곡식을 뜯어 먹으며 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고삐가 풀린 소는 마음껏 뜯어 먹는다. 그러면 인근 어른이나 아이 가리지 않고 남의 소라도 야단친다. 주인이 소를 몰고 가다 그럴 경우는 놀라 큰소리치며 고삐를 잡아당긴다. 위 시가 지어진 시기는 18세기이다. 살기가 힘들던 때이다. 안살림을 하던 아내로서는 먹는 게 부족하니 당연히 불만이 많았을 게다. 뼈 빠지게 일해도 항상 먹을거리가 모자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괜히 짜증이 나는데 풀 데가 소밖에 없다.

그제 부산민학회 주경업(85) 회장께서 별세하시어 부산 청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필자가 문화부 기자 시절부터 함께 답사도 다니고, 필자의 연재 글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셨다. 미술교사를 지내셨지만, 일찍 그만두고 굿이나 춤마당 등을 찾아다니며 민초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취재해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묘사하셨다. 함께 고택 답사를 하던 중 소가 남의 곡식을 뜯어먹는 걸 보곤 “우리 민족에겐 소가 사람이야”라고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난다.

장례식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산복도로 시인’ 강영환(74) 선생도 주 회장님과의 여러 인연을 이야기하셨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4. 4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5. 5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8. 8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9. 9[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2. 2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3. 3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4. 4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5. 5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6. 6[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0. 10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