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천마산의 모습(卷裏天磨色·권리천마색)/ 아스라이 아직 눈앞에 펼쳐지네.(依依尙眼開·의의상안개)/ 이 사람 지금 가고 없는데(斯人今已矣·사인금이의)/ (함께 갔던) 옛길은 날마다 생각나네,(古道日悠哉·고도일유재)/ 가랑비 내리던 영통사(細雨靈通寺·세우영통사)/ 만월대엔 해가 저물었지.(斜陽滿月臺·사양만월대)/ 죽고 살고 만나고 헤어짐을 겪고서(死生曾契闊·사생증계활)/ 센 머리로 혼자 배회하네.(衰白獨徘徊·쇠백독배회)
위 시는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의 시 ‘천마록 뒤에 쓰다(題天磨錄後·제천마록후)’로, 그의 문집인 ‘용재집(容齋集)’ 권2에 들어있다.
이행이 죽은 벗인 박은(朴誾·1479~1504)을 생각하며 쓴 시이다. 이행은 연산군 즉위년(1495), 박은은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박은은 이행보다 나이가 한 살 적고, 벼슬에 나간 것 역시 한 해 늦었다. 신숙주의 손자 신용개가 박은의 자질을 알고 선뜻 사위로 삼았다. 그러다 연산군 7년(1501) 함께 홍문관 수찬으로 재직하며 폭군인 연산군에게 빌붙은 권세가를 비판했다. 박은은 동래로 유배됐다가 26세에 죽임을 당했다. 이행은 유배갔지만 살아남았다.
이행은 벗이 죽은 후 ‘천마록(天磨錄)’을 꺼내 읽으니 옛 생각이 절로 났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하며 쓴 책이었다. 가랑비 내리던 영통사와 석양 비치는 만월대를 함께 걸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벗은 죽고 이행 자신은 살아있다. 벗이 많이 보고 싶다.
그제인 1일 오후에 부음 소식을 듣자마자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고교 1년 후배이자 신문사 입사도 1년 후배인 박무성 전 국제신문 사장이 세상을 뜬 것이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배라도 세상을 버리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데, 후배이니 놀라움은 가히 뭐라 할 수 없었다.
같은 신문사 내에서 더군다나 고교 1년 선후배 사이여서 개인적인 친분이 많았다. 그는 기자로서 능력이 뛰어났고 후배들도 잘 챙겨줘, 으뜸이었다. 훤칠한 키에 젠틀맨 풍모였다. 빈소에 가 술을 한 잔 따르면서 그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