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살아온 서른 해(等閒三十歲·등한삼십세)/ 부귀는 내 모르겠네.(富貴未如何·부귀미여하)/ 밤비에 넋두리 일어나고(夜雨牢騷集·야우뢰소집)/ 가을바람에 생각 많아지네.(秋風感慨多·추풍감개다)/ 인심은 악착같은데(人心皆齪齪·인심개착착)/ 세상사 하나같이 우습기만 하네.(世事一呵呵·세사일가가)/ 농사지을 밭뙈기 얻어진다면(願得桑麻土·원득상마토)/ 휘파람 부르며 밭을 갈 텐데.(耕雲任嘯歌·경운임소가)

위 시는 영·정조 시대 문사인 유금(柳琴·1741~1788)의 ‘우습기만 하네(一呵呵·일가가)’로, 그의 문집인 ‘말똥구슬(蜋丸集·낭환집)’에 있다. ‘낭환집’의 서문은 연암 박지원이 썼다.

유금은 원래 이름이 유련(柳璉)이나 거문고를 좋아해 유금(柳琴)으로 개명했다. 실학자 유득공의 작은아버지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서호수 등과 교유한 실학자이다. 학문·예술을 즐기며 북학파 벗들과 평생 교유하였으며, 세 차례 중국 연경을 다녀왔다. 이덕무와 동갑의 친한 벗이었으며, 아홉 살 어린 박제가와도 친구로 지냈다. 그 모임의 중심에 박지원이 있었다.

어영부영 살다 보니 서른이 됐다. ‘얼마나 가치 있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답답하다. 밤비가 울적한 마음을 적시고, 가을바람은 생각을 더 어지럽힌다. 사람들은 악착스러워지는데, 세상사 돌아가는 꼴을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돌아갈 땅이라도 있으면, 휘파람 불며 열심히 농사라도 지으며 살고 싶다고 혼자 넋두리한다.

유금은 1776년(영조 52) 진하사(進賀使)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가면서 20대인 조카 유득공과 그의 친구들인 이덕무·박제가·이서구 네 사람 시를 모아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라는 이름으로 엮어 들고 갔다. 청나라 문인의 평을 듣기 위해 가지고 갔다. 청나라 문인 이조원과 반정균이 이들의 시를 읽고 비평했으며, 서문에서 이들을 사가(四家)라고 불렀다. 이조원·반정균의 서문과 평어가 붙은 ‘한객건연집’은 조선과 청나라에 널리 퍼졌으며 당대 조선의 시 수준을 중국에 알리는 지침서가 됐다.

그제 ‘추사 김정희에 대하여’ 인문학특강을 하며 ‘한객건연집’에 대해 잠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