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邊塵未掃猶多憾·변진미소유다감
단풍과 국화가 눈에 가득한 가을에(赤葉黃花滿目秋·적엽황화만목추)/ 푸른 시내와 산이 시름에 젖게 하네.(碧溪靑嶂使人愁·벽계청장사인수)/ 변방 먼지 사라지지 않아 아직 한이 많으니 (邊塵未掃猶多憾·변진미소유다감)/ 궁중 향해 임금 그리며 몇 번이나 고개 들었나.(望日思君幾擧頭·망일사군기거두)
위 시는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9월에 청음석에서 노닐며 지은 절구 1수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九月, 遊淸吟石, 有詩一絶曰)’로 그의 문집인 ‘월천집(月川集)’에 들어있다. 청음석은 이황의 숙부인 이우(李堣·1469~1517)가 노닐며 시를 남긴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의 도계에 있는 반석이다. 후손들은 청음석 언덕에 ‘도계정사’를 세우고 ‘청음헌’ 편액을 걸어 이우와 이황을 함께 기렸다.
본관이 횡성인 조목은 이황의 고제(高弟)로 도산서원에서 ‘퇴계집’ 간행을 주도했으며, 제자 중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에 배향됐다. 임진왜란 때 예안 일대에서 의병을 이끌고 싸웠으며, 아우와 두 아들을 곽재우 진영에 합류시켜 영남을 방어하는 데도 큰 힘을 보탰다.
시의 둘째 구는 왜적의 침입으로 단풍과 국화가 아름다운 가을에 산하가 신음하고 있음을 말한다. 셋째 구에서는 한스럽게도 아직 왜적을 몰아내지 못한 상황을 설명하며, 넷째 구에서는 임금에게 충정을 다하여 힘을 합쳐 왜를 물리치자는 내용을 함의한다.
임란 때 예안현감으로서, 조목과 의기투합해 왜에 대적한 신지제(申之悌·1562~1624)는 위 시를 차운해 시를 지었다. 향병을 이끌고 함께 왜적에 대항하던 조목에게 신지제가 곧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에 공을 세울 것임을 고무하는 내용으로, ‘삼가 월천 조목 어른의 시를 차운하며 지은 시 1수(謹次月川丈 趙公 穆韻 1首·근차월천장 조공 목운 1수)’이다. “금 기운이 살벌한 해국의 가을에(金氣稜稜海國秋·금기릉릉해국추)/ 흰 깃대 휘날리는 곳 오랑캐 벌벌 떠네.(白旄揮處虜人愁·백모휘처로인수) …”
조목이 71세인 1593년 9월 신지제와 청음석에서 시를 주고받았다고 짐작된다. 이황의 문하생이 된 후 평생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조목의 글들을 읽다 그의 절의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