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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24> 가을이 떠나가는 무렵 지은 조선 전기 문사 권우의 시

온 마당에 비바람 소리 내며 절로 날아다니네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11-21 18:36:17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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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

대는 푸른빛을 나누어 서재에 그림자 드리우고(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 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어 나그네의 옷에 가득하게 하네.(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 낙엽 또한 기세를 생기게 할 줄 알아(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 온 마당에 비바람 소리 내며 절로 날아다니네.(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

위 시는 매헌(梅軒) 권우(權遇·1363~1419)의 ‘가을날에(秋日·추일)’로, 허균이 조선 전기의 한시를 엮은 책인 ‘국조시산’ 권2에 들어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표정을 잘 드러내 주는 시이다. 대나무는 변함없이 푸른빛으로 서재에 스며들고, 국화는 맑은 향을 사람은 물론 온 사방에 풍긴다. 시인은 예민한 사람이라 했던가. 그 맑은 국화향이 옷에 가득 물듦을 느낀다. 낙엽까지 바람에 날리며 소리를 낸다. 비 내리는 소리 같고, 바람소리 같다. 대개 사람은 낙엽소리에 쓸쓸해지는 걸 느끼지만 권우는 그렇지 않다. 그의 마음이 맑아서일까.

요즘 날씨가 위 시의 내용과 같다. 단풍이 좋다는, 목압서사에서 가까운 피아골 단풍 축제는 11월 첫째 주에 끝났다. 쌍계사 십리벚꽃 벚나무는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며칠 전에는 첫눈이 내렸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지는 제법 됐다. 문중마다 시제(時祭)를 지내는 때이다. 필자도 지난 19일 축문을 써 고향에 가 시제를 지내고 왔다.

이때쯤 지리산 화개골에서는 마을마다 야유회를 간다. 필자가 사는 목압마을 주민은 관광차 한 대를 빌려 어제 통영을 다녀왔다. 봄에는 녹차 잎과 고사리를 채취하고, 여름에는 민박 손님 받고, 가을에는 밤을 따고, 최근엔 곶감을 만드는 등 한 해 열심히 몸 움직이며 일하신 어르신들은 이 야유회를 통해 쌓인 피로와 근심을 푸신다. 야유회를 통해 마을 주민끼리 친목도모를 하는 건 물론이다.

시골은 한 마을이 함께 소통하고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더구나 지리산 주능선인 토끼봉 벽소령 삼신봉으로 둘러싸인 이 골짜기는 간밤에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고 나면 다 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주지 않으려 서로 애쓰고, 어른 공경할 줄 알고 젊은 사람을 다독이는 인성교육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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