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돌몽은 기인공인 김 씨 집안의 노비였다. … 이웃에 사는 정 선생이란 분이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박돌몽이 장가든 후 정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더니, 선생이 허락해주셨다. 돌몽은 새벽마다 일어나 책을 끼고 선생 댁 앞으로 갔다. … 수업을 받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전처럼 일을 해 김 씨 집에서는 이 일을 알지 못했다.

朴突夢, 其人貢人金家奴也. … 隣有丁先生者, 家居敎授, 突夢旣髻, 就先生願受業, 先生許之. 突夢日晨興, 懷書候其門, … 授則還家, 供役如故, 金家莫之知也.

(박돌몽, 기인공인김가노야. … 인유정선생자, 가거교수, 돌몽기계, 취선생원수업, 선생허지. 돌몽일신흥, 회서후기문, … 수즉환가, 공역여고, 김가막지지야.)

위 문장은 여항문인 호고재(好古齋) 김낙서(金洛瑞·?~?)의 ‘박돌몽전(朴突夢傳)’ 일부로, 유재건(1793~1880)의 ‘이향견문록(異鄕見聞錄)’에 수록돼 있다. 그런데 김낙서의 ‘호고재고(好古齋稿)’가 원출전으로 돼 있다.

‘기인공인’은 공조(工曹)에 소속돼 땔나무나 숯 등을 청부받아 납품하는 공인을 일컫는다. 박돌몽은 그 집안의 노비였다.

생략된 문장의 내용을 정리하여 설명을 보태겠다. 그는 한 해 남짓 만에 ‘소학’ ‘논어’ ‘맹자’ 공부를 마치고, 이른바 문리가 트여 선생도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그는 낮이나 밤에 일할 때도 늘 문장을 외웠다.

그러다 조판서(趙判書) 댁에서 박돌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감옥의 아전으로 기용했다. 하지만 그는 하도 고생을 많이 한 탓에 나이 사십에 죽고 말았다.

박돌몽이 김 씨 집안의 노비로만 살았다면 좀 더 오래 살아 배운 것을 써먹을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여러 노동에 시달린 데다 공부하느라 밤잠도 설쳤기 때문에 건강이 망가졌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의 질시로 어쩔 수 없이 식솔을 거느리고 떠돌이 생활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한 공부에 대한 성취감이나 자존감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상 살아가는 게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게 쉽지 않다. 어른들 말씀대로, 다 팔자대로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