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은 푸른 잎의 인연을 그리워하나니(梨花有思緣和葉·이화유사연화엽)/ 강가의 배나무가 머리를 어지럽히네.(一樹江頭惱殺君·일수강두뇌쇄군)/ 과부 집의 젊은 부인과 꼭 같나니(最似孀閨少年婦·최사상규소년부)/ 청초한 화장에 흰 소매 푸른 비단 치마 입었네.(白妝素袖碧紗裙·백장소수벽사군)

위 시는 당나라 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772~846)의 ‘강기슭의 배꽃’(江岸李花·강안이화)으로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돼 있다. 809년 백거이가 원구(元九)의 동천로(東川路) 시에 화답한 ‘수화원구동천로 12수(酬和元九東川路詩十二首)’ 중 한 수이다. 원구는 원진(元稹·779~831)을 일컫는다. 원진이 감찰어사로 동천(東川)으로 가게 되자 한림학사로 함께했던 백거이가 이별의 아쉬움에 원진의 시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수화원구동천로시 12수’를 지었다.

강가 배나무에 배꽃이 피었는데, 마음을 어지럽힌다. 흡사 젊은 과부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화장을 청초하게 하고 푸른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이다. 시인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없다. 시인 눈에 배꽃이 그런 이미지로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다.

봄꽃이 피는 시절이다. 그제 화개장터 옆 섬진강가에 나갔는데 배꽃이 벌써 일부 핀 게 아닌가? 지금은 매화·산수유꽃이 한창인데, 배꽃이 피기에는 좀 이르다. 강 건너 매화마을에는 오는 8일부터 매화축제가 시작되니 말이다. 목압서사 마당 배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필자는 백거이의 위 시를 외우는 터라 금방 연상이 되었다. 배꽃을 읊은 시로는 이만한 작품이 드물다. 청순한 젊은 과부, 그것도 청초하게 화장한 여인에 비유한 상상력이 대단하다. 게다가 그 과부는 푸른 비단 치마를 입었다. 아마 푸른 비단 치마는 첫 구에서 표현한 ‘배꽃은 푸른 잎의 인연을 그리워하나니’와 연관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는 신문사 재직 때 부산 기장에 살며 배 농사를 지은 적이 있어 배꽃에 대해 조금 아는 편이다. 그제 지인들과 이야기하며 “배꽃은 선비의 기운이 느껴지는 매화와도 다른데 벚꽃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매화와 벚꽃 중간 어느 지점에 있는 꽃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