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採蕨晴登屋上山·채궐청등옥상산
벼슬에서 물러난 뒤 몇 년간 날마다 한가한데(就第年來日日閑·취제년래일일한)/ 벼슬길에서 파란이 많아 아직도 놀란다네.(尙驚宦海足波瀾·상경환해족파란)/ 물고기를 낚으러 울타리 옆 바위에 고요히 앉아 있고(釣魚靜坐籬邊石·조어정좌리변석)/ 갠 날이면 고사리 채취하러 집 뒤 산에 오른다네.(採蕨晴登屋上山·채궐청등옥상산)
위 시는 고려 후기 문신인 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1295~1359)의 ‘어떤 이에게 주다’(有贈·유증)로, 그의 문집인 ‘급암집(及菴集)’ 권3에 들어 있다. 칠언율시이나 앞 4구만 인용했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한 그는 성균대사성·감찰대부·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 등을 지냈으며, 이제현·정자후 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았다.
그러던 그가 첫 구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몇 년 동안 날마다 한가한데’라고 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공민왕이 즉위하자 민사평은 면직됐던 것이다. 요즘 말로 소위 ‘백수’가 되어 집에서 한가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당시에도 벼슬살이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둘째 구에서 ‘벼슬길에서 파란이 많아 아직도 놀란다네’라고 하지 않는가. 성품이 온화하여 벗이나 친척과 화목하게 잘 지냈고, 관직에 있을 때도 모나지 않게 일을 처리했다는 평을 들은 그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벼슬에서 물러나니 마음은 편했으리라. 물고기 낚고 날씨 좋은 날이면 산에 고사리를 꺾으러 올라갔다.
필자 역시 어제 아침 날씨가 맑아 해 뜨자마자 집 뒤 차산에 고사리를 꺾으러 올라갔다. 비가 계속 내리다 날씨가 맑고 기온이 올라서인지 고사리가 쑤욱 올라왔다. 벌써 피어버린 고사리도 있었다. 두릅도 어떤 것은 너무 커져 있었다. 낫으로 가시를 베어내는 등 여러 일을 하며 고사리를 채취하다 보니 속도가 느렸다. 땀이 너무 많이 나 내려왔다 오후에 다시 가 고사리를 더 꺾었다.
그러고 보니 고사리를 처음 채취하는 사람은 고사리를 어느 지점에서 따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고사리 아래를 잡고 손으로 쭈욱 올리면 절로 “톡”하고 꺾이는 지점이 있다.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눈대중으로 꺾을 수 있다. 그런데 산 곳곳에 멧돼지가 칡을 캐 먹는다고 판 커다란 구덩이가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