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역시 공정한 도가 없으니(東風亦是無公道·동풍역시무공도)/ 온 나무에 꽃이 피었건만 사람만 늙었네.(萬樹花開人獨老·만수화개인독노)/ 억지로 꽃가지 꺾어 흰 머리에 꽂으니(强折花枝揷白頭·강절화지삽백두)/ 허연 머리가 꽃처럼 아름답지 못하네.(白頭不與花相好·백두불여화상호)
위 시는 조선 중기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의 ‘꽃을 마주하고 늙음에 탄식하네’(對花嘆老·대화탄로)로, 그의 문집인 ‘손곡집(蓀谷集)’ 권6에 수록돼 있다.
첫 구 표현에 담긴 뜻이 재미있다. 봄바람은 만물에 생기를 준다. 만물에 새 생명이 다시 살아나게 한다. 흔한 말로 봄바람이 만물을 회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봄바람이 공평하지 않다. 유독 사람만 회춘시켜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이 든 사람이 머리에 꽃을 꽂는다 하여 젊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시인 이달이 쑥스럽게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 본다. 춘흥(春興)이다. 그런데 고목에 꽃이 핀 듯 스스로 민망한 감정이 든다. 장삼이사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월을 어찌 탓할까마는, 슬픈 장면이다. 시인인 이달은 결국 비감에 젖고 만다. 화개 십 리 벚꽃이 만개하였을 때 많은 사람이 찾아와 즐겼다. 나이 든 분들도 머리에 꽃을 꽂고 예쁘게 웃으며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마음만은 청춘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예쁜 꽃을 꽂은들, 그 자체가 꽃인 젊은이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꽃을 마주하고 시를 짓다’(對花有吟·대화유음)에서 “꽃가지 꺾어 허연 머리에 꽂았지만(爲折花枝簪白髮·위절화지잠백발)/ 꽃은 노인의 머리에 오른 것 창피해하리라.(花應羞上老人頭·화응수상노인두)”라고 읊었다. 꽃이 창피해하든 말든 나이에 상관없이 머리에 꽃을 꽂아보자. 그 순간만은 절로 청춘으로 돌아간다. 기쁨이 샘솟는다.
필자도 얼마 전 차산에서 낫으로 풀을 베다 모과나무에 핀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원두막에 한참 앉아 있었다. 흰머리가 대부분인 필자 역시 꽃을 꽂았지만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 들었는가 싶었다. 물론 지역 어르신들에 비하면 필자는 아직 청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