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69> 꾀꼬리 우는 소리에 자기 처지 읊은 고려 후기 임춘

시골집에 오디 익고 보리도 익어 가는데(田家葚熟麥將稠·전가심숙맥장조)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4-04-30 18:49:52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시골집에 오디 익고 보리도 익어 가는데(田家葚熟麥將稠·전가심숙맥장조)/ 녹음 짙은 숲에서 이따금 꾀꼬리 소리 들리네.(綠樹時聞黃栗留·녹수시문황률류)/ 꽃 아래서 풍류 즐기던 서울 손님을 안다는 듯(似識洛陽花下客·사식락양화하객)/ 은근히 꾀꼴 꾀꼴 쉬지 않고 울어대는구나.(殷勤百囀未能休·은근백전미능휴)

위 시는 고려 후기 문인 임춘(林椿·1149~1182)의 ‘늦봄에 꾀꼬리 소리를 듣고’(暮春聞鶯·모춘문앵)로, ‘동문선’ 권19에 들어있다.

위 시는 늦봄에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읊는다. 그는 고려 귀족 사회에 기반을 둔 집안이었으나, 20세 전후 무신이 일어나는 바람에 가문 전체가 화를 입었다. 그 뒤로 10년가량 피신하다시피 힘들게 살았다. 아마 위 시는 그 무렵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실의와 빈곤 속에 방황하다가 결국 30대에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농가에 뽕나무 열매인 까만 오디가 익어 가고 밭에서 보리가 익어 간다. 둘째 구의 ‘황율(黃栗)’은 누런 밤송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꾀꼬리를 비유해 쓴 말이다. 꾀꼬리는 녹음 속에서 객이 들으라는 듯 꾀꼴꾀꼴 운다. 수도 개성에서 여유롭게 잘 살았지만 지금은 숨어 사는 자기 처지를 알기나 한 듯 꾀꼬리는 쉬지 않고 울어댄다. 셋째 구 ‘화하객’은 봄철 꽃나무 아래에서 꽃을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오언절구를 모은 초학 교재인 ‘추구(推句)’에 꾀꼬리를 잘 묘사해 놓았다. “하얀 해오라기 점점이 하얀 눈 같은데(白鷺千點雪·백로천점설)/ 노란 꾀꼬리는 한 조각 황금덩이 같도다.(黃鶯一片金·황앵일편금).” 꾀꼬리를 직접 본 사람 말에 따르면 정말 황금덩이처럼 누렇다고 한다.

요즘 꾀꼬리 소리 듣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많이 날아다니던 제비도 잘 안 보인다. 오늘이 5월 첫날이다. 지난달 말부터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늦봄도 없이 바로 여름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목압서사 뜰에 있는 뽕나무에 올해 유달리 오디가 많이 달렸다. 다 크지도 않았는데 익어가는 것인지 색깔이 조금 변하는 것 같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시사난장] 풀숲에 버려진 ‘영도다리의 뼈’
  4. 4“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5. 5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6. 6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7. 7“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8. 8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9. 9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10. 10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李 대통령 지지율 1%p 하락 39%…민주 국힘 경합
  6. 6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7. 7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8. 8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9. 9[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10. 10李 대통령 지지율 2%p 오른 46%…조희대 탄핵 반대 45%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4. 4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5. 5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6. 6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7. 7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8. 8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9. 9‘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0. 10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3. 3“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4. 4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5. 5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6. 6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7. 7착취 당한 男 장애인 구조해도…부산엔 임시거처조차 없다
  8. 8국회 복지위 ‘침례병원 정상화’ 정부 결단 촉구
  9. 9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10. 10“대화 거부한 건 대주주…당당하면 왜 국회서 소명 안 했나”
  1. 1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2. 2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