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長無客到田家·일장무객도전가
나비는 쌍쌍이 채소밭 꽃으로 날아들고(胡蝶雙雙入菜花·호접쌍쌍입채화)/ 해는 길어도 시골집엔 오는 손님이 없네.(日長無客到田家·일장무객도전가)/ 닭은 날아 울타리를 넘고 개는 쪽문에서 짖어대니(鷄飛過籬犬吠竇·계비과리견폐두)/ 행상꾼이 와서 차를 사고 있나보구나.(知有行商來買茶·지유행상래매차)
위 시는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호가 석호거사(石湖居士)인 범성대(范成大·1126~1193)의 ‘늦봄 전원의 흥취’(晩春田園雜興·만춘전원잡흥)로, 그의 문집인 ‘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詩集)’에 들어 있다.
늦봄이다. 나비가 짝을 지어 채소밭 꽃을 찾아 날아든다. 해가 길어졌다. 시골이라 방문객이 없다. 누구라도 찾아오면 함께 차나 술을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나누련만 일부러 누가 찾아오겠는가. 갑자기 마당의 닭이 놀라 울타리를 넘어가고 쪽문(개구멍)에서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올 사람이 없는데 요란한 걸 보니 차를 만드는 이웃집에 행상하는 장사꾼이 차를 사러 온 모양이다. 마당에 나가지 않아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듯이 훤히 안다. 그만큼 오는 사람이 일정한 시골이다.
남송 4대가의 한 사람인 그의 위 시는 청신(淸新)한 시풍으로 전원 풍경을 잘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늦봄이라 하지만 요즘 거의 여름 날씨이다. 지리산 화개골 쌍계사 인근 국사암 동네에 있는 목압서사에는 방문객이 더러 있다. 한문과 고전공부를 하러 오는 분, 인문학 특강을 들으러 오는 분들이 늘 계신다. 또 여러 지방에서 한학 공부를 하는 분들이 일부러 찾아오시기도 한다.
지금 목압서사 마당 뽕나무에 오디가 까맣게 익고 있다. 따 먹다 보면 손톱 밑과 손바닥에 잉크색 물이 든다. 그다지 크지 않은 대봉감나무에 감꽃도 노랗게 피고 있다. 어릴 적 자고 나면 큰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져 마당에 수북했다. 주워서 할머니께 갖고 가면 실에 꿰어 목걸이를 크게 만들어주셨다. 그러면 놀면서 감꽃을 하나씩 빼 먹었다. 매실도 많이 달렸지만 약을 치지 않아 대부분 떨어진다. 돌배나무에도 벌레가 붙었는지 잎이 누렇다. 범성대의 위 시를 계기로 목압서사의 가는 봄 풍광을 잠시 묘사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