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31> 이규보가 친구의 집을 찾아 눈 위에 이름을 쓴 시

채찍 들어 이름자 휘갈겼네(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4-12-22 18:38:40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눈 색이 종이보다 더욱 희어서(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 채찍 들어 이름자 휘갈겼네.(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바람아 불어서 땅 쓸지 말고(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려무나.(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

위 시는 고려 시대 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1169~1241)의 ‘눈 속에 친구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여’(雪中訪友不愚·설중방우불우)로,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 8에 실려있다.

눈이 많이 내려 쌓인 날 이규보가 친구 집을 찾았다. 아마 친구가 다른 일이 있어 나간 모양이다. 이규보는 말을 타고 있었다. 그리하여 말 위에서 채찍으로 눈 위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리곤 바람에게 부탁하였다. 바람이 불면 눈 위의 이름이 지워지니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많이 알려진 시이다. 상징성과 이규보의 능청맞은 해학성도 돋보인다.

집주인이 와 자신이 방문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눈 위에 쓴 이름을 지우지 말라고 바람에게 부탁하는 표현은 시인이라고 다 할 수 없다. 대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며 위 시를 많이 인용했다. 언젠가 이 지면에도 한 번 써먹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제 고등학교 동창 다섯 명이 1박 2일로 필자가 있는 화개골로 찾아왔다. 정주와 김국진은 고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다. 다들 세월을 이기지 못해 머리 위에는 허연 눈이 쌓여 있는 듯했다.

마침 이날은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친구들은 화개장터에서 점심을 먹고 막걸리까지 한잔한 뒤 필자와 만나 커피를 마셨다. 친구들은 고교 때 같은 반을 했거나 졸업 무렵 서로 친해져 지금까지 가족처럼 지내오는 사이라고 했다. 햇수로 46년간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숙소 아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마셨다. 다음 날 아침 불일폭포에 가자고 친구들은 호기롭게 말들을 했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김국진은 턴테이블과 LP판을 차에 싣고 와 숙소에서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생 때 듣던 노래를 틀었다.

이규보가 눈 위에 채찍으로 자신의 이름을 쓴 상황과는 다르지만, 눈 내리는 날 친구 중 가장 편한 고교 시절 친구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시, ‘부산항선’ 이달 예타 신청…원도심~북항 잇는 24.21㎞ 트램
  2. 2“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3. 3부산 동래·금정구 하늘에 뜬 ‘쌍무지개’…희망과 행운의 메시지
  4. 4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5. 5[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6. 6[속보]돌아온 ‘부캉이’, 식지 않는 인기…누적 방문객 80만 넘어
  7. 7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8. 8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9. 9“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10. 10"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1. 1[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2. 2'좌아하게'? 다시 논란 부른 이 대통령 SNS 정치
  3. 3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4. 4[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5. 5與 “조희대, 국감 출석 불응 의사…불출석은 국회법 위반”
  6. 6'광대극' 조소 이어 미사일로 응답한 北. 좁아진 청와대 입지
  7. 7李대통령, 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에 “철저 조사 지시”
  8. 8영화 '암살자(들)' 논란 속 장동혁, 고(故) 육영수 생가 방문
  9. 9국힘, 싱가포르영화제 ‘암살자(들)’ 상영 철회 서한…與 “영틀막”
  10. 10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1. 1“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2. 2[속보]돌아온 ‘부캉이’, 식지 않는 인기…누적 방문객 80만 넘어
  3. 3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4. 4"산업용 차등요금제, 기업의 지역이전 효과 극히 불투명"
  5. 5"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6. 6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7. 7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급증… 재정 부담 가중될 듯
  8. 8카카오 월4900원 멤버십 출시…네이버 쿠팡과 3파전
  9. 9이억원 “AI 해킹 가능성…금융권 최고수준 경각심 가져야”
  10. 10미래대응기금, 국감 쟁점 부상…국회 "재원 지속가능 의문"
  1. 1부산시, ‘부산항선’ 이달 예타 신청…원도심~북항 잇는 24.21㎞ 트램
  2. 2부산시, ‘부산항선’ 이달 예타 신청…원도심~북항 잇는 24.21㎞ 트램
  3. 3부산 동래·금정구 하늘에 뜬 ‘쌍무지개’…희망과 행운의 메시지
  4. 4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5. 5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6. 6"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7. 7[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8. 8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9. 9“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10. 10울산바위 배경으로 사진 찍다 추락한 70대 등산객 숨져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3. 3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4. 4‘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5. 5[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6. 6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7. 7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8. 8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9. 9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10. 10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