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餘皆得着脚·여개득착각
산에 오름은 공부하는 것과 같아서(登山如進學·등산여진학)/ 큰 고생 뒤에는 큰 즐거움 얻는다.(大苦必大樂·대고필대락)/ 오직 하늘만을 오르지 못할 뿐이요(惟天下可升·유찬하가승)/ 다른 모든 땅은 내 발로 밟으리라.(餘皆得着脚·여개득착각)
위 시는 성호 이익의 조카인 혜환 이용휴(1708~1782)가 ‘백두산으로 떠나는 정란(鄭瀾·1725~1791)을 배웅하며’ 제목으로 쓴 연작시 중 제7수이다. 그의 문집인 ‘惠寰詩集(혜환시집)에 있다.
정란에게 산을 오르는 일은 공부에 매진하는 것과 같다. 당시 백두산에 오른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다. 그리하여 정상에 올랐을 때 그 기쁨은 힘든 만큼 크다. 이용휴는 정란이 하늘에 오르는 것 외에는 조선 땅을 다 밟을 것이라고 했다. 이용휴의 표현대로 정란은 조선 천지를 발로 다 누볐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태백산 소백산 등 명산을 두루 등반했다. 백두산은 정상까지 올랐고, 금강산은 네 차례나 밟았다.
정란은 경상도 군위군 소보면에서 태어나 청천 신유한(1681~1752) 문하에서 공부했다. 정란이 28세 때 스승 신유한이 세상을 뜨자 공부를 접고 30세부터 여행에 나섰다. 당시 선비가 현실 도피적인 방법의 하나로 여행하던 경향과는 달랐다. 전문 여행가이자 산악인으로 나섰다. 그의 벗인 치암 남경희가 정란은 세속 욕심과 거리가 먼 데다 틀에 박혀 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18세기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않고, 짐승도 많은 시절에 여행가의 삶을 산다는 게 일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 고교 동창에게서 안부 전화를 받았다. “산티아고 다녀온 여독은 다 풀렸냐?”고 물어왔다. 그러면서 “백두대간 종주했고, 지리산 종주는 밥 먹듯 했고, 실크로드도 오래 다녔고, 타클라마칸 사막 걷고, 사하라 사막도 일부 걸었으니 한 군데 남았네. PCT(Pacific Crest Trail·멕시코 국경~캐나다 국경·4300㎞) 걸어야지”라고 했다. 필자는 “산티아고 다녀온 뒤 PCT 걷기를 심각하게 생각해 봤는데, 한국인 60대가 걸은 지 사흘 만에 죽었다고 해 겁이 나 포기한 상태”라고 답했다. 문득 정란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