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매우 밤 들어 개더니(江南梅雨夜來晴·강남매우야래청)/ 옥절이 당당히 만리 길 떠나시네.(玉節堂堂萬里行·옥절당당만리행)/ 성군께서 임헌하여 보내신 일 생각하시어(恭惟聖主臨軒送·공유성주임헌송)/ 이에 가시거든 예전 맹약 따져 보시구려.(此去應尋舊日盟·차거응심구일맹)
위 시는 추호(秋湖) 박필채(朴苾彩·1841~1925)가 1876년(고종 13) 예조 참의로 수신사에 임명돼 일본으로 가는 김기수(金綺秀)의 서기로 참여한 죽존(竹尊) 박영선(朴永善)에게 준 시 세 수 중 첫째로, 그의 문집 ‘추호유고(秋湖遺稿)’에 있다.
첫 행의 ‘梅雨(매우)’는 매실이 누렇게 익을 무렵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둘째 행 ‘玉節(옥절)’은 옥으로 만든 부신(符信)으로, 옛날 관직 증서를 말한다. 셋째 행 ‘성주임헌(聖主臨軒)’은 임금이 조심해서 잘 갔다 오라고 친히 격려했다는 뜻으로 보면 될 듯하다. 위 시는 임금의 명을 받은 박영선이 사신으로서 위엄을 보여 일본과 맺었던 이전의 맹약을 제대로 지키도록 외교 능력을 발휘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박영선은 도쿄 순천당의원의 오다키 토미카와(大瀧富三)에게 종두법을 배우고 구가 가스아키(久我克明)의 ‘種痘龜鑑(종두귀감)’을 구해 와 제자인 지석영에게 주어 보급하도록 했다. 위 시를 지은 박필채는 동래에서 훈장으로 명성을 얻어 1905년 동래에 설립된 외국어 학교인 개양학교(開揚學校)의 부교장을 맡았고, 동래기영회 설립에 참여해 회장을 지냈다. 1906년 동래기영회가 세운 삼락학교(三樂學校)의 교장이 되었다. 1907년 11월 개양학교가 삼락학교에 흡수돼 동래사립동명학교(현 동래고등학교)로 개편된 후 초대 교장을 지냈다. 1908년에는 동래 향교 유림이 건립한 사립 명륜학교(현 동인고등학교)의 학감에 선임되었다.
엊그제 엄경흠 신라대 명예교수님을 만나 그가 최근 펴낸 ‘19세기~20세기 초 부산 지역 한시(漢詩) 작가들의 시적(詩的) 교류’(역락) 제목의 저서를 얻었다. 그로부터 책을 내기까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부터 저술하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책에 실린 내용 중 근대 부산 지역에서 가장 돋보인 교육자 박필채의 시를 인용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