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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45> 19세기 말~20세기 초 부산 기장 선비 가산 정인준의 시

시서가 온 벽에 가득하니(詩書滿壁盡·시서만벽진)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5-02-18 18:37:33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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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松菊)이 작은 시내 위 피어 있고(松菊小溪上·송국소계상) / 달팽이 같은 한 초가집이 있네.(如蝸一草家·여와일초가)/ 시서가 온 벽에 가득하니(詩書滿壁盡·시서만벽진)/ 동산에 꽃 심을 필요 없겠네.(不必種園花·불필종원화)

위 시는 가산(珈山) 정인준(鄭寅準·1858∼1933)의 ‘이웃 아이가 지은 시의 가(家)자 운에 화운하다(和隣兒家字韻·화린아가자운)’로, 그의 문집 ‘가산집(珈山集)’에 수록돼 있다. 그는 1858년 당시 기장현 서사정리(西沙汀里)에서 출생해 평생 기장에서 살다가 1933년 76세로 세상을 버렸다. 정인준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으나 서당을 개설해 학동을 가르쳤다. 이웃 학동이 오언절구를 지어 스승인 그에게 보여준 모양이다. 어린 제자가 시를 지어왔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시의 수준을 따지기 전에 기특하여 화운(和韻)을 했다.

정인준의 화운 시에는 스승답게 조그만 서당에 책이 가득하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가 깔려있다. 또 정인준은 시 ‘8월 16일 비가 내리다’(八月十六日雨·팔월십육일우)에 “학동은 도롱이 쓴 채 아침부터 소 치고(學兒戴笠朝牛牧·학아대립조우목)/ 나무 하던 노인은 창 열고 낮에 새끼 꼬네(樵老推窓晝索綯·초로추창주삭도)” 구절이 있다. ‘學兒(학아)’는 자신의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농사를 도우며 서당에서 공부했다. 학동을 생각하는 자상한 스승의 인품이 드러난다.

그는 기장 지역과 인근 시인들로 추정되는 김해창(金海滄) 오승선(吳承宣) 문남헌(文南軒) 송임재(宋林齋) 송한산(宋漢山) 김백오(金栢塢) 김백암(金栢庵) 등과 교유했다. 또한 시 ‘수리정에 올라’(登愁離亭·등수리정)에서는 1689년 1월 숙종이 장희빈 소생의 왕자(뒷날 경종)를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에 반대한 스승 송시열을 지지하다가 기장으로 유배온 지호(芝湖) 이선(李選·1632~1692)이 수리정 터에 올라 회상한 내용을 소재로 읊었다. 그만큼 시를 통해 기장의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기록하였다. 기장 지역 자료를 뒤적이다 정인준의 시를 여러 편 읽었다. 이 글을 쓰면서 조창규 경성대 교수의 ‘가산 정인준의 생애와 한시’ 논문도 일부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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