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坐待眞成被花惱·좌대진성피화뇌
물결 타고 걷는 선녀가 버선발로 먼지(물방울) 일으키며(凌波仙子生塵襪·능파선자생진말)/ 희미한 달빛 아래 물 위를 사뿐사뿐 걷네.(水上盈盈步微月·수상영영보미월)/ 누가 이토록 애끓는 혼을 불러온 것인가?(是誰招此斷腸魂·시수초차단장혼)/ 심어서 겨울의 꽃 만들어 애절한 시름을 붙였네.(種作寒花奇愁絶·종작한화기수절)/ 향기 머금은 흰 몸은 성을 기을어뜨릴 미인 같고(含香體素欲傾城·함향체소욕경성)/ 산벚꽃(철쭉)은 아우요 매화는 언니로다.(山攀是弟梅是兄·산반시제매시형)/ 앉아서 바라보니 정말로 꽃에게 괴로움을 당해(坐待眞成被花惱·좌대진성피화뇌)/ 문을 나와 한 번 웃는데 큰 강물이 가로 흐르고 있네.(出門一笑大江橫 ·출문일소대강횡)
위 시는 송나라(북송)의 대표적 시인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왕충도가 수선화 50가지를 보내와 혼연히 기뻐하며, 이를 위해 읊다’(王充道送水仙花五十枝(支), 欣然會心, 爲之作詠·왕충도송수선화오십지(지) 흔연회심 위지작영)으로,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 제4권의 칠언고풍단편(七言古風短篇) 등에 실려 있다.
수선화가 아름다워 여러 시인이 시를 읊었지만 황정견의 위 시가 단연 뛰어나다. 조선의 선비들도 수선화를 읊으면서 황정견의 위 시를 참조했다. 시는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비유법으로 묘사하며 시작한다. 수선화를 물 위를 걷는 선녀라고 비유하며 그 우아함과 신비로움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수선화를 성을 무너뜨릴 만한 미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방에서 수선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빠져 괴롭다고 말한다. 그 괴로움이란 시인에게 매혹적임과 동시에 일종의 철학적 고뇌를 준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에 김창업과 박규수 등 여러 시인이 수선화에 대한 시를 읊었다. 조선에서는 수선화가 귀해 중국에서 구근을 구해와 심어 감상했다.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중 그곳에서 수선화를 보고 시를 읊었다.
필자는 어제 하동군 산림조합이 운영하는 나무시장에 가 집에 심을 나무 묘목 몇 그루와 수선화 2개를 샀다. 노랗게 꽃이 핀 수선화는 자그마한 포트에 담겨 있었다. 꽃이 참 예쁘다. 수선화를 집안에 들여놓고 바라보면서 황정견의 위 시를 떠올리며 여러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