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一片磯頭獨不眠·일편기두독불면
거울 속 시내에 파초(芭蕉) 잠겨 어른거리고(鏡裡溪光浸綠天·경리계광침록천)/ 솔불 밝아 단풍나무 주변이 환하네.(松燈的歷照楓邊·송등적력조풍변)/ 긴 장대로 고기 잡는 늙은이 누구인가?(長竿取適誰家老·장간취적수가로)/ 한 줄기 물가 위쪽에서 홀로 잠 못 이루네.(一片磯頭獨不眠·일편기두독불면)
위 시는 개화기 경남 사천과 진주, 하동 등지에서 서당을 열어 후학을 가르친 옥화(玉華) 이철수(李徹洙·1853~1927)의 ‘깨끗한 시내의 고기잡이 횃불’(淸溪漁火·청계어화)로, 그의 문집 ‘옥화집(玉華集)’ 권 1에 수록돼 있다.
이철수는 본관이 평창(平昌)으로, 자(字)는 학중(學仲), 호는 옥화(玉華)이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隱士里)에서 태어나 종조(從祖)인 반계(槃溪) 이문택(李文宅)으로부터 공부를 익혔다. 은사리는 평창 이씨 집성촌으로 한때 8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30여 가구가 있다. 이철수는 사천시 곤명면과 진주시 대평면·내동면, 하동군 옥종면 등지에서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사후에 후학들이 청아유계(菁莪儒契)를 만들어 매년 음력 3월 16일 은사리에 있는 영모재(永慕齋)에서 향례를 봉행했는데, 유계원이 55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철수는 어느 날 솔불을 밝혀 시내에서 고기를 낚았다. 셋째 구의 ‘취적(取適)’은 ‘취적비취어(取適非取魚)의 줄인 말로 낚시질을 함에 있어 고기를 잡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세상을 잊고서 자적(自適)하는 데 있음을 표현한 어휘이다. 그런데 시내 위쪽에 사는 그는 그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서 그랬던 것이리라. 그의 사후 세월이 흐르고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원고 대부분이 분실됐다. 1964년 그의 문하인 강재희(姜在熙)와 종손(從孫)이자 문하로, 청아유계장(菁莪儒契長)을 지낸 이성환(李聖煥) 등이 유고를 모아 ‘옥화집’을 발간했다.
어젯밤에 필자가 목압서사 아래 목압교(木鴨橋)로 산책하러 갔는데. 계곡에서 사람들이 등불을 켜고 고기를 잡고 있었다. 집에 와 받아놓은 ‘옥화집’을 펼쳐 읽다가 위 시가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이철수는 이완용 전 국제신문 서부경남취재본부장의 집안 할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