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당(의정부) 깊은 곳에 풍악 소리 구슬프니(廟堂深處動哀絲·묘당심처동애사)/ 만사를 지금은 도무지 알 수가 없네.(萬事如今摠不知·만사여금총부지)/ 버들잎 푸르러 봄바람에 슬슬 날리고(柳綠東風吹細細·유록동풍취세세)/ 꽃은 밝은데 봄날은 참 더디기만 하네.(花明春日正遲遲·화명춘일정지지) 선왕의 대업을 금궤에서 뽑아내며(先王大業抽金櫃·선왕대업추금궤)/ 거룩한 님 홍은 입어 옥잔 술로 취했다네.(聖主鴻恩倒玉巵·성주홍은도옥치)/ 즐겁지 않은가, 어찌 길이 즐기지 않으랴?(不樂何爲長不樂·불락하위장불락)/ 남 노래 이어 부르며 취하고 배부르니 태평한 때로다.(賡歌醉飽太平時·갱가취포태평시)

위 시는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의정부 자리에서 짓다’(議政府席上作·의정부석상작)로 ‘동각잡기 상(東閣雜記 上)’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과 ‘유한잡록(遺閑雜錄)’ 등에 보인다. 남효온 문집인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과 권별(權鼈)의 ‘해동잡록(海東雜錄)’ 권1 본조(本朝)에도 위 내용의 기사가 보인다.

세조가 의정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위 시는 의정부 벽에 걸렸으나 뒤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시에 분노와 슬픔이 깔려있고 풍자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여 임금인 세조가 되었다. 그의 즉위 후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당했다. 이들 여섯 명을 사육신(死六臣)이라고 한다.

필자는 지난 7월 31일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에 갔다. 집안 조카인 조병욱 박사의 아내로 차인(茶人)인 주경숙 질부가 최근 중국 무이산 등에 차(茶) 탐방 갔다가 필자에게 주려고 차를 한 통 구해 왔다고 해 받으러 간 것이다. 문중 총무 조호곤 부부 및 조카 내외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竗谷)을 찾았다.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이곳에 육신사(六臣祠)가 있다.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와 여종이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았다. 이씨 부인은 아들을 낳고 여노비는 딸을 낳았는데, 서로 바꿔 길러 혈통이 이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