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생명의 숲’ 으로 불리다가
- 3년 뒤 ‘일해’ 사용 확정 논란 불씨
- “주민 발의 위한 서명 확보에 총력”

“전두환 공원 문제는 합천 지역의 일이기도 하지만, 굴곡진 역사를 바로 펴고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와 참된 가치를 전해줄 수 있어 모든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일입니다.”

고동의 간사가 ‘일해공원’ 명칭 변경에 대한 당위성과 향후 투쟁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14일 만난 생명의 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 고동의(53) 간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위한 주민 발의 서명 확보에 여념이 없다. “공원 명칭을 바꾸려는 노력이 고단하고 힘들지언정 역사의 정의 실현과 합천 발전에 보탬이 되는 길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그는 16일까지 합천군 유권자 50분의 1에 해당하는 청원인을 모집해 주민 발의를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일해공원을 둘러싼 명칭 논란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공원은 애초 2000년 ‘새천년 기념사업’으로 착공돼 총사업비 68억 원을 들여 2004년 완공됐다. 사업 추진의 배경에 맞춰 잠정적으로 사용한 공원 명칭은 ‘새천년 생명의 숲’이었다. 그러나 합천군은 정식 공원 명칭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완공 3년이 지난 200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확정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일해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직후 반발에 나섰던 대책위원회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지난해부터 군민운동본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 간사는 “5·18민주화운동으로 핍박받았던 김대중 정부 지원으로 공원을 만들고, 정작 공원 명칭은 5·18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의 호를 사용했다”며 “전국의 조롱거리가 됐지만, 합천 지역 위정자는 이런 부끄러움을 외면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군민운동본부는 ‘일해공원’ 지명 결정이 적법성을 갖추지 못한 임의적 행정 행위라는 지적과 함께 합천군에 법과 조례에 근거한 지명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지만 거부됐다. 고 간사는 “법과 규정을 앞서서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군정 책임자가 그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주민의 간곡한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14년째 제자리걸음이었던 공원 명칭 논란은 지난해 10개 지역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군민운동본부로 거듭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런 변화는 지난 10월 25일 광주를 찾아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로 이어졌다. 고 간사는 “광주 시민에게 무형의 빚이 있는 만큼 광주 방문은 오래전 계획했지만 수해 등으로 미뤄졌다”며 “전두환 씨로 인해 피해를 본 오월 영령을 추모하고, 공원 명칭을 반드시 바꾸겠다는 약속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항의 집회에 그쳤던 활동도 법적 투쟁과 함께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활용한 여론전으로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고 간사는 “군민 대부분이 정치적 색채를 띤 공원 명칭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소도읍 특성상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부담을 갖는다”며 “이번 주민 발의를 통해 지역민 누구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 출신인 고 간사는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8년 귀농해 합천과 인연을 맺었다. 평범하게 토마토 농사를 짓던 그는 주민 반발에도 ‘일해공원’ 명칭이 유지되는 데 의구심을 갖던 끝에 지난해부터 간사직을 맡아 공원 명칭 변경에 앞장섰다.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