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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있다, 부산문화의 길 <7> 해양문화로 본 상해거리 차이나타운

바다 건너와 정착 화교(華僑)…부산과 동고동락 130년, 해양문화 콘텐츠로 충분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0-11-02 20:42:3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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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가 산둥성 출신… 항구도시에서 항구로 배 타고 들어와 새 둥지
- 교류·타문화 수용 전형

- '내안의 他者'인 그들, 부산 근·현대사 한 축
- 동반자이자 한식구로 생각하는 태도 필요

- 화교들을 주역 내세워 고유의 축제·행사 개최
- 관광자원 등 활용하면 지역재생도 빨라질 것

초량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부산화교중학교의 담벼락이 삼국지의 인물들을 그린 벽화로 치장돼 있다.
"배를 몰아 험한 물살 헤치고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받아줄 수 없으니 다시 바다로 나가라'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들더러 죽으라는 얘기와 똑같다. 받아줘야 한다. 그래서 항구도시의 문화는 수용의 문화다."(김희진 영화감독·영화공간 '보기드문' 대표)

"다 받아주니까 바다다."(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20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중국 광둥성의 상인 양목민(楊牧民)이란 사람이 상선에 짐을 싣고 바다를 건너오다 해로를 잃고 표류하고 만다. 그 와중에 선원도 몇 사람 죽었다. 위기상황이었다. 힘겹게 바다를 떠돌던 중 양목민은 어느 밤 먼 곳의 불빛을 발견한다. 그 불빛을 따라 들어온 곳이 바로 부산항이었고 그들은 살았다.

양목민은 난바다에서 봤던 그 어둠 속 불빛의 정체가 궁금했다. 알아보니, 그 장소는 당시 청관거리(현재 부산 중구 초량동 상해거리 차이나타운) 바로 뒤 영주동 언덕이었다. 양목민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불빛이 타올랐던 자리를 사서 표류 도중 비명에 간 동료선원들을 묻어주었다. 그는 그 땅의 소유권을 당시 청관거리에 있던 화교들에게 넘기고 떠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의 '영주동 언덕'은 영주1동 5, 9, 11번지 일원에 해당하며 1887년 설정된 청국조계지에 속했다. 이곳은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국에 보기 드문 '화교의 소유지'이자 청관거리와도 가까운 이 장소를 보고 일시에 피란온 화교들이 몰려들면서 자치적 성격의 화교 집단거주지로 바뀌었고 '충효촌'(忠孝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자리에는 2006년 아파트가 들어서 충효촌은 이름만 남게 됐지만, 이 마을이 현재의 상해거리 차이나타운과 영고성쇠를 함께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청관거리가 '상가'였다면, 충효촌은 '거주지'구실을 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국해양대 김태만(동아시아학과) 교수가 쓰고 부산발전연구원이 2009년 말 발간한 부산학 국제학연구 저서 '내안의 타자(他者), 부산 차이니즈 디아스포라'에 부산화교협회 총용자 회장의 증언으로 실려있다.

■광둥에서 표류해온 양목민, 불빛을 보다

철학자인 이지훈(오른쪽) 씨가 해양문화의 관점에서 부산 상해거리 차이나타운이 갖는 의미를 현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이 같은 증언 속에 "초강력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있다"며 "초량동 상해거리 차이나타운 자체를 해양문화의 눈으로 조명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고 진정한 우애의 마음을 갖고 이를 잘 활용하면 지역문화나 지역재생 차원에서 커다란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제안한 이는 철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이지훈('예술과 연금술' '가까운 문화 멀어진 미학' 등의 저자) 씨다. 그는 "현재 초량 차이나타운의 유래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 양목민의 이야기 자체가 전형적인 해양콘텐츠"라며 "양목민이 봤던 불빛은 영주동 언덕의 실화로 추정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 처지에 서서 중국의 해양세력이 신봉했던 마조여신의 영험 같은 신비요소와 결합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인류사 속의 해양문화가 오늘날 말하는 것은 뭘까. 핵심은 걸림 없는 월경(越境)과 이를 통한 국제성(국제교류)이다. 중국의 화교문화는 이런 가치를 공유한다. 중국역사에서 화교는 해금(海禁)정책이 시행된 명·청대에 광둥, 푸젠성 중심의 해양권 주민들이 바다 건너 이주하면서 본격화됐다. 이들이 해외로 이주해 형성한 차이나타운 중 유명하고 큰 것은 대개 항구도시에 있다는 것도 재밌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차이나타운이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뉴욕, 밴쿠버 등이 항구를 끼고 있고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이 있다는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가 항구도시다. 한국에도 서울에는 딱히 차이나타운이 없고 항구도시인 인천과 부산에는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여기에 대해선 단지 경제적 기준만 갖다댈 순 없고 고국을 떠나올 때부터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했던 화교 1세대들의 정서가 반영된 건 아닌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외지인에 관대한 해양문화권역인 항구도시를 택한 것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부산의 초량 차이나타운의 화교의 90% 가량이 광둥·푸젠이 아닌 산둥성 출신이란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부산화교협회가 확인한 현황에 따르면 2009년 6월 현재 부산의 화교는 2345명이다. 협회에 등록된 총 815가구의 부산 화교 가운데 756가구가 산둥성 출신이다.

이 씨는 "산둥은 고대 제나라 노나라 시절부터 중국의 해양무역 지대였고 특히 초량의 화교들은 대부분 산둥성 북부 해안의 유명한 항구도시 옌타이 지구에서 왔기 때문에 항구에서 항구로 온 셈"이라며 바다라는 공통분모는 더 도드라진다고 설명했다.

■수호지 당랑권 손자병법 양목민…

부산 화교들은 1883년 청나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한국 최초 세관인 부산해관이 설치될 때 터를 닦았고,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하고 일본의 조선 탄압이 심해졌을 때 크게 위축됐다. 그러다 1922년 부산항 제2부두 건설 때 일손이 모자라 산둥의 중국 노동자 수백명이 유입되면서 또 늘었다. "단순히 중국인이 와서 산 게 아니라, 부산 화교들은 부산의 도시형성과 발전을 같이했던 이들"이란 것이다.

이런 눈으로 보면, 많은 게 새로 보인다. 우선 작은 것부터. 현재 초량 차이나타운에는 경극 '패왕별희'에 나오는 항우와 우희 동상이 서있고 부산화교중학교 벽에는 삼국지의 한 장면이 벽화로 치장돼 있다. 그런데 사실 '패왕별희'는 초량 차이나타운이 갖는 '산둥성 콘텐츠'나 '해양콘텐츠'로서 특징과 거리가 있고, 삼국지 그림은 몇년 전 인천 차이나타운이 길이 150m의 삼국지 벽화거리 조성으로 이미 선수를 친 것이다. 이 같은 상징물이 이곳 화교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면 마땅히 그 판단은 존중받아야겠지만, 차라리 부산 화교들의 고향인 산둥성을 무대로 삼고 있는 '수호지'의 양산박이나 산둥성 출신인 손무가 쓴 '손자병법'으로 이곳을 장식했다면 더 개성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지울 수는 없다. 광둥에서 배를 타고 와 충효촌의 씨앗을 뿌린 양목민을 기리는 조형물은 또 어떤가. 마조여신과 신비의 불빛도 대상이 된다. 초량 화교들이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고 바다를 건너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런 뿌리를 되살릴 때 효과도 더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중국 산둥성이 본향인 당랑권을 한국에 전수한 '한국 당랑권의 시조' 고 강경방 선생이 도장을 열었던 곳도 초량 차이나타운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당랑권 또한 이 거리를 채울 콘텐츠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인문적 관점과 존중의 미덕 필요

크게 본다면, 초량 차이나타운이 갖는 해양문화콘텐츠의 가능성을 십분 살리고 이곳을 지키며 살아온 화교들을 주역으로 내세워 이 지역을 문화와 국제교류가 살아있는 지역으로 재생시키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인문적 시선을 바탕으로 지역민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머리를 맞대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씨는 "그 전에 관계 당국이나 시민이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존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와 함께 이 고장에서 열심히 살아온 부산 화교들을 동반자이자 한 식구로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한 태도라는 점, 초량 차이나타운에 대한 접근을 돈벌이에 급급한 조급한 태도가 아니라 '이 지역 주민들이 잘 살 수 있게 문화적으로 재생했더니 관광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더라'라는 식의 문화적 관점을 적용할 것 등입니다." 축제나 행사도 이곳 화교들이 주체적으로 이끌고 참가할 수 있도록 바꾸고 부산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 기업가, 행정기관 등의 자원과 역량을 활용할 길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초량 차이나타운 관련 시책이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또 겉돌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항구와 기차역을 동시에 끼고 있는 세계에 드문 차이나타운, 배를 타고 부산에 들어오는 러시아 사람들의 거리와 역시 중국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사람들이 만든 화교거리가 합쳐져 있는 유일한 차이나타운. 해양문화의 눈으로 이 거리를 바라보자, 새로운 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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