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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붙잡혀 극심한 고문을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독립지사 김병현(80·경남 창원시 반지동) 선생. 보훈연금으로 생활하는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라고 말했다. 조미령기자 ilove@kookje.co.kr |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삶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재산과 토지를 모두 몰수 당했고 해방후에는 권력의 노른자위를 차지한 친일파에게 '좌익'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해방전에 순국했을 경우 후손들의 삶은 더욱 고달팠다. 정부의 무관심속에 가난은 대물림됐고 배움의 기회도 박탈당했다.
특히 생존 독립지사나 유족 가운데 12%가 홀로 사는 노인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적이었다. 부산 전체 125만1069가구 가운데 홀로사는 노인의 비율(4.3%) 3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현재 독립지사 및 후손으로 지정된 유공자는 9694명. 이중 5773명이 정부의 보훈혜택을 받고 있다.
본지가 7월 한달간 부산·울산·경남의 독립유공자와 후손 200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66%가 '빈곤층'이라고 응답했다. '소득수준이 상위권'이라는 응답은 4%에 그쳤다.
구체적인 소득수준과 질병·주거형태를 알아보기 위해 30명을 선정해 심층 면접을 벌인 결과 역시 비슷했다. 일제 강점기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과 각종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독립유공자가 대부분이었다. 김임순(84) 할머니는 성필환(1896~1969) 독립지사의 며느리. 성 지사는 1920년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하다 일경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남편마저 일찍 잃은 김 할머니는 젊은 시절 삯바느질과 식모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8년전 치매에 걸린 김 할머니는 부산 동삼동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딸 성소혜(55)씨와 둘이 산다. 보훈연금 80여만원으로 의식주와 약값을 해결한다.
남편이 임시정부 시절 백범 김구 선생의 경호원이었던 이모(75) 할머니. 그는 부산진시장에서 40여년간 생당면 노점상을 하며 두 아들을 억척같이 키웠다. 이 할머니의 고단한 삶이 시작된 것은 광복후 군인의 길(육사 7기)을 걷던 남편이 1961년 중령 예편후 일찍 숨을 거두면서부터이다. 나이가 많아 지난해 가을 노점을 그만뒀지만 모아둔 재산이라곤 부산지방보훈청에서 대출받아 구입한 덕천동 16평짜리 주공아파트 달랑 하나다. 이 할머니의 장남(50)은 현재 별 다른 직업없이 어머니와 함께 산다.
이들 가족의 월 수입은 1989년부터 지급되고 있는 100만원이 조금 넘는 보훈연금이 전부.
독립유공자 및 후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홀로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 본지 조사결과 12%가 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거인이 '2인 이하'인 경우도 57%에 달했다.
부산흥사단 진영택 회장은 "독립유공자 3, 4대 역시 생활이 어려워 할아버지나 부모 세대를 모실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남 창원에서 3·1 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지사의 손자 김모(73·부산 사하구 다대동) 할아버지. 11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혼자서 쓸쓸한 황혼을 보내고 있는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심장병·뇌출혈과 싸우며 병원을 드나들거나 3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남포동 일대를 배회하는 것이 고작이다.
갖은 고생끝에 양복점 도매점을 장만했던 김 할아버지는 10년 전 믿었던 지인에게 보증을 섰다가 전 재산을 날린 뒤 쪽방생활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의 현재 월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자 수당과 보훈연금, 노인수당, 6·25 참전용사 수당, 장애인 3급 수당 등 총 53만여원이 전부다.
일제의 고문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생존 독립지사 김병현(80·경남 창원시 반지동) 선생. 부인과 단 둘이 사는 그는 창 밖을 바라보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조선독립당을 만들어 일본 열차 폭파를 기도했던 김 선생은 1944년 7월 일본 경찰에 붙잡혀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최근에는 뇌졸중과 척추디스크에 심장병까지 달고 산다. 그나마 최근 정부가 선물해 준 전동 휠체어 덕분에 근처 공원으로 산책나가는 일에 재미를 얻게 됐다.
한편 부산 사상구청이 최근 독립유공자 및 후손 20명을 대상으로 소득수준을 분석한 결과 월 소득 300만원 이상에 주택을 보유한 중산층은 7명에 불과한 반면 월소득 300만원 미만의 중·하층이 13명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월 소득 100만원 이하에 영구임대주택이나 전·월세에 거주하는 극빈층의 비율이 40%인 8가구에 달했다는 점. 특히 독립유공자의 손자 12명 가운데 극빈층이 절반인 6명이나 돼 '가난의 대물림'이 뚜렷했다.
국민대 장석흥(사학과) 교수는 "독립지사들이 항일운동을 하느라 재산과 가정을 돌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후손들은 물려 받은 것 없이 배움의 기회도 박탈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회1·2부 광역이슈팀
신수건기자 giant@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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