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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박근이 지사의 미망인 방일선(75·오른쪽에서 두번째) 할머니가 가족들과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큰 딸 춘희(51), 차남 문길(31), 맨 오른쪽이 둘째 딸 춘자(41)씨. 서순룡기자 seosy@kookje.co.kr |
독립지사 미망인은 장애인. 함께 사는 막내 아들도 역시 장애인. 둘의 월 소득은 보훈연금 91만원 뿐. 미망인의 두 딸은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돈 벌러 나섬. 장남은 가출했다가 병을 얻어 요절.
부산 사상구 모라3동 주공아파트에서 만난 방일선(75) 할머니의 가족사는 독립운동 가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고난과 눈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방 할머니는 박근이(1908~1976년) 지사의 미망인.
박 지사는 1931년 11월19일 대구에서 일본 병사들을 실어나르는 열차를 폭탄을 터트려 전복시키려다 붙잡혀 7년간 옥살이를 했다.
풀려났을 때는 고문 후유증으로 몸뚱이가 성한 곳이 없었다. 해방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것을 본 박 지사는 하루에 몇 마디 하지 않던 말문 마저 끝내 닫아 버렸다.
청각·언어 장애 4급인 방 할머니는 "남편은 세상을 뜰때까지 심한 천식과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였어. 돈을 벌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고 했다.
가족에게 남긴 재산이 있을 리 없었다. 경제능력이 없는 남편 대신 장애인인 방 할머니가 생계를 꾸려야 했다.
말을 제대로 못하고 귀도 들리지 않으니 삶이 고단할 수 밖에 없었다.
'독립유공자의 가족'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가난을 해결할 수 없었다. 먹고 살기 빠듯해 4남매 가운데 두 딸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나섰다.
장남은 중학교 2학년때 가정형편을 비관해 가출해 전국을 유랑하다 폐결핵과 만성간질환으로 지난 2001년 세상을 등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정신지체 3급인 막내 아들 문길(31)씨는 75세의 방 할머니에게 얹혀 사는 신세다. 문길씨 역시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남편마저 폐인처럼 지내다 저 세상으로 가는 바람에 가정이 풍비박산됐지. 나도 몸이 아파 자식들을 공부도 제대로 못시켰어. 자식들한테 죄를 지은 것 같아 하루도 마음이 편칠 않아."
친척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차녀 춘자(41)씨는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독립운동으로 인해 우리 가족이 힘겨운 시간을 보낸 건 사실"이라며 "중학교를 못 간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말했다.
고향이 경북 청도인 방 할머니는 한국전쟁후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와 온천장 하천에 움막을 짓고 정착했다.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며 푼돈을 벌었다. 돈을 조금 모아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30여년을 떠돌아 다니던 방 할머니는 1993년이 돼서야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했다.
평생을 뼈 빠지게 일했지만 방 할머니의 전 재산은 무일푼에 가깝다.
매달 정부로부터 나오는 독립유공자 유족연금 91만4000원과 영구임대주택 보증금 190만원이 전부.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지정되기 전인 1990년까지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정부 지원금 66만8000원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요즘 방 할머니에겐 반갑지 않은 친구가 하나 생겼다. 심장병이다. 지난해 봄에는 쓰러져 45일간 부산 보훈병원에 입원했었다. 요즘도 매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세월은 내가 편해지는 걸 참지 못하나 봐. 금세 심장병을 친구로 내려 주잖아." 점심은 모라종합사회복지관의 무료급식으로 해결한다.
둘째딸이 자주 찾아와서 살림을 거들어 주지만 할머니의 12평 영구임대아파트 내부에는 살림살이가 별로 없다.
정신지체인 아들 문길씨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방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는 정연자(57) 통장은 "외국에선 독립운동을 하면 국가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사회적인 지원과 예우가 너무 형편없다"고 한숨을 지었다.
모라3동 박순규 사회복지사는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어려운 삶을 산다는 게 분통터진다"면서 "독립 운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이 계셨기에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