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중앙동에서 담배 소매업을 하는 김모(52) 씨. 성인오락실에서 1만 원을 날린 그는 분식점을 찾았다. 가게는 제법 넓은데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음식을 주문하는 사이 화장품 영업사원이 들어온다. 40대 중반인 주인에게 상품 자랑을 늘어 놓는다. 분식점 주인은 샘플을 발라 보더니 '다음에 들르라'며 돌아 선다. 밤 늦게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김씨의 어깨는 무겁다. 중·고등학생인 아들 2명의 학원비 걱정 탓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부산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사는걸까?"
해답은 김 씨의 하루 생활에 모두 들어 있다. 음식점업부터 방문판매업까지 영세 사업체가 고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없다 = 취재팀은 통계청의 '사업체 기초통계 조사'에 나타난 산업을 194개로 소분류해 일자리 변화를 살펴 봤다. 2004년의 특징은 소비업의 부상과 제조업의 퇴진이었다. 고용 비중 1~10위권에 소매업이 절반에 가까운 4개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제조업은 아예 빠져 있었다.
1994년 8.8%이던 음식점업 종사자는 2004년 2.5%포인트 상승한 11.3%를 기록하며 부동의 1위를 지켰다. 부동산 관련서비스업도 아파트 건설 열풍의 영향으로 27위(1.24%)에서 6위(2.08%)로 도약했다. 방문·통신판매를 일컫는 무점포 소매업은 0.47%에서 2004년 1.88%로 비중이 증가하며 62위에서 9위로 상승했다.
대표적 1인 사업장인 음·식료품 및 담배판매의 경우 2004년 도·소매업을 합친 비중이 3.58%로 2위인 육상여객운송업(3.56%)보다 높았다. 1994년 고용비중이 0.23%에 머물던 사업시설유지관리 및 고용서비스업은 1.88%로 늘며 전체 10위로 뛰어 올랐다. 고용의 '유연화'에 따른 비정규직 양산과 실업률 증가가 인력 파견 및 공급 확대를 초래한 것이다. 부산외국어대 박영구(경제학) 교수는 "영세 소매업이나 부가가치가 매우 낮은 직업군이 고용 비중 상위권에 포진돼 있다"면서 "부동산 중개업 및 무점포 소매업의 경우 임금 대신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 직업 안정성도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과거 부산의 성장 동력이던 제조업은 날개없이 추락했다. 신발 제조업의 경우 1994년 고용 비중 2위(4.02%)에서 2004년 29위(1.15%)로 28계단이나 떨어졌다. 봉제의복 제조업 비중도 3위(3.12%)에서 19위(1.75%)로 낮아졌다. 1994년에 비해 고용비중이 1%포인트 이상 상승한 직종은 음식점업·사업시설유지관리 및 고용 서비스업·무점포 소매업·의료업·부동산관련 서비스업 등 5개였다. 반면 보험 및 연금업·봉제의복 제조업·신발 제조업은 1%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부산대 임정덕(경제학) 교수는 "부산은 제조업의 대체산업으로 영세한 도소매업과 음식점업이 발달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취업 기회를 제한당한 청년층이 도시를 이탈하면서 지역 노동력의 고령화가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노동조합 줄고 사행성 오락실 늘어 = 영세 사업체의 증가와 높은 실업률은 노동조합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1994년 부산지역 노동조합 상근자는 9505명이었지만 2004년 759명으로 92%나 줄었다. 전체 사업체 종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844%에서 0.066%로 0.778%포인트 떨어졌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부산의 노동조합은 1994년 539개에서 2003년 356개로 줄었다. 조합원 수도 13만3526명에서 7만5326명으로 10년 새 43.6%나 감소했다. 부산의 총사업체 종사자가 증가한 상황에서 노동조합 및 조합원이 감소한 것은 그 만큼 비정규직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손정순 연구위원은 "부산의 산업 및 근로 여건이 전국 평균보다 나쁜 상황에서 노동조합마저 줄어들어 노동자의 권익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사행성 오락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 오락관련 사업은 10만208명에서 12만38명으로 증가했다. 고용 비중도 0.57%에서 1.22%로 높아졌다. 부산이 일하기는 힘들어지고 도박에 빠지기 쉬운 도시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